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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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7.83%의 득표율을 얻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48.56%보다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졌다. 불과 24만여표, 역대 대선에서 최소 표 차이다. 대선정국에서 정권교체 흐름이 강하게 형성됐을뿐더러 특히 젊은 층의 표심이 이 후보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석패(惜敗)의 원인이 됐다. 막판에 젊은 여성층이 대거 이 후보 쪽으로 지지를 보낸 것은 대반전의 모멘텀이 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약간 부족했다.

대선 결과를 놓고 민주당 내부의 평가는 다양하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송영길 대표 등 지도부는 ‘패배’에 방점을 찍었다. 국민의 눈높이를 반영한 결단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패배는 했지만 선전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압축되는 평가가 제일 많아 보인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이 후보 지지자들은 몰라도 민주당 내부에서 할 얘기는 아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진 것이다. 0.1%포인트건 10%포인트건 패배는 패배일 뿐이다. 그것이 대선의 룰이다.

대선 이후 민주당이 다시 험로를 걷고 있다. 당장 윤호중 비대위 체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부딪히고 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구심체가 돼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민주당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다시 당권을 쥐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윤 비대위원장 체제로 가기로 결정했다면 이제는 다른 목소리를 자제해야 한다. 자칫 자중지란으로 오는 지방선거까지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 석패에 대해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디지털성범죄집단 ‘엔(n)번방’을 추적해온 박지현씨가 민주당 비대위에 공동위원장으로 합류한 것은 시의적절한 결정이라 하겠다. 젊은 층을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치기한 저급하고도 구태의연한 선거행태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민주당이 적극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민주당은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러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획책하며 그 결과를 선거지형에 유리하도록 ‘프레임’으로 재생산해내는 ‘나쁜 정치’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저항으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는 졌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격려의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당장 젊은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둘 다 싫어서 투표장에 가질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한 표라도 던졌어야 했다며 아쉬워하는 40대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 더욱이 민주당 안팎에서는 ‘다시 이재명’을 소환하는 목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민주당 재기의 든든한 우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민주당 혁신’의 깃발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6.1 지방선거라는 또 하나의 큰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전이나 그 이후도 크게 달라져 보이질 않는다. 일부 비대위 인물들이 젊고 새롭긴 하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윤호중 위원장 곁에 있을 뿐, 새 출발의 의미로는 약하다는 얘기다. 대선 패배 이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어도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다시 지지해 달라고 이번엔 무엇으로 호소할 것이냐고 물어도 역시 손에 잡히는 명분이 약하다. 그렇다면 대선 패배 이후 무난하게 수습해서 무난하게 가다가 지방선거 때 또 무난하게 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민주당은 지금 더 가혹하게 개혁과 혁신의 선봉에 서는 모습이어야 한다. 정권 인수인계 작업에 시선을 빼앗겨 윤석열 당선인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그런 모습으로는 또 한계에 직면할 뿐이다. 당 밖으로는 개혁, 당 안으로는 혁신에 나서면서 0.73%포인트 석패에 잠 못 이루는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적극 화답해야 한다. 그리고 새 정부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좌충우돌하는 윤 당선인의 언행에 실망하고 절망하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돼야 한다. 굳이 이번 지방선거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두어 달이 아니라 앞으로 5년을 봐야 한다. 혹여 윤석열 정부가 엉뚱한 곳으로 갈 때는 이를 견제하고 비판하면서 반듯한 대한민국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젠 제1야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더 고달파질 국민의 삶에도 든든한 힘이 돼야 한다. 다시 신자유주의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선거결과는 그 산물일 뿐이다.

윤호중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가 검찰개혁을 후퇴시키지 않도록 검찰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조이겠다”며 “새 정부 출범 이전까지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검찰개혁에서 후퇴할 수도, 또 후퇴해서도 안 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당연한 것이다. 이 밖에도 ‘개헌’을 비롯해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안을 시급히 재정비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공약이다. 여성정책을 후퇴시키는 윤 당선인의 정부조직개편과도 맞서야 한다. 이와 함께 민주당 내부의 혁신에도 적극 매진해야 한다. 새롭고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발탁해서 ‘민주당의 인재’로 만들어 내야 한다. 그 대신 구태에 찌든 기성 정치인들이나 국민의 눈높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당내 저급한 정치꾼들도 이번 기회에 솎아내야 한다. ‘비상(非常)’이 달리 비상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지금 ‘육참골단(肉斬骨斷)’이 없다면 민주당은 이 기회를 또 놓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100% 졌다’고 읽는 것이 마땅하다. ‘촛불 혁명’을 이끈 문재인 정부가 불과 5년 만에 밀려났다. 더 이상 ‘졌잘싸’, 이런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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