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나 볼만한 희고 깨끗한 벽면에 작은 창문들이 곳곳에 나 있는 건물이 의정부 안말 마을에 우뚝 솟아있다. 사진은 의정부시를 대표하는 미술관 ‘백영수 미술관’ (제공:백영수 미술관) ⓒ천지일보 2022.3.17
지중해에서나 볼만한 희고 깨끗한 벽면에 작은 창문들이 곳곳에 나 있는 건물이 의정부 안말 마을에 우뚝 솟아있다. 사진은 의정부시를 대표하는 미술관 ‘백영수 미술관’. (제공: 백영수 미술관) ⓒ천지일보 2022.3.17

의정부에 우뚝 솟은 흰 건물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전설

백영수 탄생 100주년 기념

한국보다 유럽서 주목받아

6.25 파란만장한 한국 상황

이중섭·김환기 함께 동인활동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갸우뚱’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소년 작품으로 유명한 고(故) 백영수(1922~2018) 화백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백영수 화백은 한국의 근현대사 미술의 역사를 쓴 ‘시대의 인물’로 간주된다. 일본 오사카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940년~1950년대 한국의 격동기를 지낸 ‘신사실파’의 동인으로 이중섭·장욱진·김환기 화가와 함께 활동했다. 최근 기자가 찾은 이곳 ‘백영수 미술관’에서 그의 일대기 가운데 삶 속 좌절과 극복, 희망과 향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주목받았던 화가다.

◆옛집 허물고 지은 ‘하우스 뮤지엄’

높게 솟은 하얀 건물에 작은 창이 나 있는 백영수미술관은 낡은 주택가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지중해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백영수미술관은 백영수 화백이 1973년 의정부시 호원동에 터를 구입해 작은 집을 짓고 화실로 사용하던 곳에 세운 ‘하우스 뮤지엄(House Museum)’이다. 이곳은 백 화백이 직접 설계한 건물로 전시실과 함께 백 화백을 추모하는 공간과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아틀리에로 구성돼 있다.

김명애 백영수미술관 관장에 따르면 백 화백이 1977년 파리로 이주한 후에도 옛집(현 백영수미술관)을 항상 그리워했다. 백 화백은 35년간 파리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1년 영구 귀국해 의정부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이곳 미술관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백영수 미술관은 2017년 개관해 2018년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된 의정부시 제1호 미술관으로 일생을 통해 남긴 미술작품들을 기념·보존·연구하며 미술문화 전시, 교육사업 등 지역 문화발전과 한국미술문화진흥에 이바지하고 있다.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오는 19일 의정부 백영수미술관에서 백영수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다. ⓒ천지일보 2022.3.17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오는 19일 의정부 백영수미술관에서 백영수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다. ⓒ천지일보 2022.3.17

◆한국 최초 추상적 화풍 ‘신사실파’

화가 백영수는 한국 최초의 추상적 화풍을 추구한 ‘신사실파’ 화가 중 한 명이다. 한국 근대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사실파’는 해방 후의 혼란한 시기에도 순수 조형미술을 하겠다는 순수하고 분명한 조형의식을 바탕으로 추상 기법을 도입한 한국 근대 추상회화 선구자들의 모임이다.

백 화백은 일본 유학 후 한국에서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넘어갔다. 1979년 프랑스 요미우리 화랑 초대전을 시작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고 동이탈리아 밀라노 파가니 화랑 초대전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100여회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2011년 영구 귀국 후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 회고전, 2016년 서울 아트사이드갤러리 개인전으로 주목받았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 은관훈장을 수상한 우리나라 미술계의 거목으로 꼽힌다.

백영수 화백의 그림에는 소년과 새가 자주 등장한다. 작품은 1976년 제작한 ‘새와 소년’ (제공: 백영수미술관) ⓒ천지일보 2022.3.17
백영수 화백의 그림에는 소년과 새가 자주 등장한다. 작품은 1976년 제작한 ‘새와 소년’. (제공: 백영수미술관) ⓒ천지일보 2022.3.17

◆‘순수한 동심’과 ‘모성애’ 표현

백영수 화백은 두 살에 어머니와 일본으로 건너가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일본 오사카 미술대학 시절 집이 불에 타 급히 한국으로 귀국해 목포에서 교편을 잡고 이후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신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며 24세의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학교를 나오게 된다. 그때 그는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힘들고 답답한 마음을 다스렸다. 그 당시 그린 작품 ‘산’에서 무거운 지게를 짊어지고 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그 당시의 백 화백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백 화백은 6.25 전쟁 피난 시절 낙동강 하류에서 예닐곱 살 되는 한 어린아이가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힘이 들었는지 고개를 옆으로 떨구며 초가집 벽에 기대어 홀로 서 있었다. 이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고 있다. 

그는 타원형의 둥근 얼굴을 한 정다운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모성애’와 ‘갸우뚱한 고개’에 녹여 표현하기도 했다. 1979년 프랑스에서 백 화백은 자기만의 독특한 모성애의 세계를 표현한 ‘모자(母子)상’ 시리즈로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끌어냈다.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을 통해 그가 그토록 갈구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했고 미술관 정원에 곳곳에 놓인 아이와 엄마의 조각상에서도 그가 추구했던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새, 개, 나무, 아이 등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소재들을 사용함으로 그리움과 향수를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한 형태와 부드러운 색채를 통해 동화 같은 분위기에서 백 화백의 동심을 엿볼 수 있으며 후반기 작품으로 갈수록 사랑과 평화, 행복의 메시지가 담긴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고(故) 백영수 화백의 아틀리에. ⓒ천지일보 2022.3.17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고(故) 백영수 화백의 아틀리에. ⓒ천지일보 2022.3.17

◆온기가 남아있는 아틀리에

높은 층고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통창 때문이었을까. 백 화백의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아틀리에는 꽤 넓어 보였다. 복층 구조의 아틀리에의 1층에는 이젤에 놓인 큰 캔버스, 물감과 붓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2층에는 백영수 화백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어 마치 실제로 살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이는 느낌을 연출했다.

백영수 화백의 아내인 김명애 관장은 “프랑스에서 항상 층고가 높았던 집에 살았다”며 “백 화백은 높은 곳에 머무르며 아래를 내려다보기를 즐겼다”고 전했다. 건축물에도 관심이 많았던 백 화백은 따뜻한 북아프리카 모로코, 튀니지 등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작품에 영감을 얻었다. 파리에서 남부 프랑스로 활동지역을 옮기면서 지중해의 건축양식은 백 화백의 그림뿐만 아니라 미술관 건축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명애 관장의 기도실에 들어서는 순간 숭고한 느낌의 그리스의 한 작은 성당이 떠올랐다. 순백색의 높은 벽에 뚫린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줄기는 한켠에 놓여진 김관장의 책상 위에 펼쳐진 성경책을 드리웠다. 이곳은 아침마다 김 관장이 기도를 드리는 곳이다. 프랑스에서 거주했던 집에서 손수 떼어온 창틀을 벽면에 장식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양쪽 벽으로는 백 화백이 생전에 유치원에 버려진 의자들을 손봐 만든 아담한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백영수 화백을 추모하는 공간에서 김명애 백영수미술관 관장은 아침마다 기도를 드린다. 부부가 거주하던 프랑스 남부의 집을 모티브로 해 만든 공간이다. ⓒ천지일보 2022.3.17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백영수 화백을 추모하는 공간에서 김명애 백영수미술관 관장은 아침마다 기도를 드린다. 부부가 거주하던 프랑스 남부의 집을 모티브로 해 만든 공간이다. ⓒ천지일보 2022.3.17

◆6.25 포로시절, 성냥갑 속 메시지

박재용 백영수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백 화백의 작품은 색깔이나 톤은 어둡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암울한 6.25전쟁의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작품활동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백 화백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새’는 ‘작가의 희망’으로 분석한다”며 “암울함 속에서 작가는 ‘그리움, 바람, 유토피아’로 이동시키는 매개수단을 ‘새’라는 상징물을 통해 구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격동의 한국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백 화백의 염원은 ‘성냥갑의 메시지’라는 회고록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 혼란스러웠던 해방기의 기쁨도 잠시 6.25 발발로 북한군에게 포로로 끌려가며 한국의 상황이 나아지길 얼마나 간절히 고대했을까.

이에 대해 김명애 백영수 미술관 관장은 “6.25 포로로 잡혀 끌려다닐 때 가람 다방 앞자리에 앉았던 전봉래 시인이 담배를 피우며 성냥갑을 하나 건넸는데 그 성냥갑 속 바닥에 ‘인천 상륙’이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고 백영수 화백의 말을 전했다.

이때의 기억이 강렬해 1983년 백 화백의 첫 회고록에 ‘성냥갑 속의 메시지’가 책 제목으로 거론이 됐으나 ‘검은딸기의 겨울’로 출간되었고 이후 ‘성냥갑 속의 메시지’라는 이름으로 재발간됐다.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해방 전후의 삶을 그린 백영수 화백의 회고록 ‘성냥갑 속 메시지’를 토대로 한 전시가 오는 19일 백영수미술관에서 열린다. ⓒ천지일보 2022.3.17
[천지일보 의정부=김서정 기자] 해방 전후의 삶을 그린 백영수 화백의 회고록 ‘성냥갑 속 메시지’를 토대로 한 전시가 오는 19일 백영수미술관에서 열린다. ⓒ천지일보 2022.3.17

박재용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화가의 아내 김명애 관장이 백영수 화백의 작품들을 시대순과 정서적 관점에 맞춰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조명하는 전시”라며 “백영수 화백의 기억(1945~1956)을 기반으로 집필된 자서전 ‘성냥갑 속의 메시지’와 김명애 회고집 ‘빌라 슐바의 종소리’을 매개로 전시 1부와 전시 2부로 진행한다”고 전했다.

김명애 관장은 “1부 전시는 파리에 가기 전까지의 작품을, 2부에서는 파리에서 시작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변화의 모습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성냥갑 속의 메시지’ 전시는 오는 19일부터 5월 14일까지 약 두 달간 열리며 전시의 대표작으로는 해방을 맞아 즐거움과 환희가 느껴지는 ‘강강수월래(1961년)’, 희망의 메시지를 피리로 표현한 작품 ‘남과 여(197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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