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난 2021년 11월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 앙상블 내한 공연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난 2021년 11월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 앙상블 내한 공연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클래식계, 러 향한 캔슬컬쳐

‘더 배트맨’ 러시아 개봉 안 해

색·침묵 등으로 표현한 패션계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서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문화계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손길을 내밀고 있어 시선을 끈다.

◆ 음악계에서 퇴출당하는 러시아 음악가들

클래식 음악계는 러시아 음악가들을 향한 ‘캔슬컬처(Cancel Culture)’ 바람이 불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사태로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불리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현재 퇴출 위기에 몰리는 중이다. 그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 중 한 명인 러시아 지휘자 게르기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난 2013년 푸틴 대통령의 세 번째 대선 출마 때 지지 연설을 한 적도 있으며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함께 지지 성명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달 24~28일 카네기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지휘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야닐 네제 세갱으로 변경됐으며 이어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 1일 게르기예프를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또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공연에서도 배제됐고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게르기예프 페스티벌’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게르기예프 외에도 여러 러시아 음악가들이 퇴출 되고 있다. 러시아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도 공연에서 제외됐다. 마추예프는 게르기예프와 함께 지난달 24일 카네기홀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 설 예정이었으나 제외됐으며 그 자리에는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투입됐다.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공연 출연 예정이었으나 취소됐으며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 1위 출신인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말로페예프’도 캐나다 공연이 취소됐다.

퇴출당하는 음악가 외에도 스스로 사임하는 이도 있다. 러시아 볼쇼이 극장 음악감독이자 프랑스 툴루즈 시립관현악단의 지휘자인 ‘투간 소키에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라는 요구로 인해 압박감을 느꼈다”면서 “친애하는 러시아와 프랑스 음악가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 후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개봉 하지 않기로 한 영화 '더 배트맨' 포스터(제공: 워너브라더스)
러시아에서 개봉 하지 않기로 한 영화 '더 배트맨' 포스터(제공: 워너브라더스)

◆ 영화계도 ‘러시아 보이콧’

영화계도 러시아를 향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먼저 헐리우드 영화사들은 러시아에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할리우드 영화업계의 주요 시장으로 꼽히지만 이번 침공에 대해 헐리우드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이달 개봉 예정이던 워너브라더스의 ‘더 배트맨’, 디즈니의 ‘터닝레드’, 소니 픽쳐스의 ‘모비우스’ 등을 러시아에서는 볼 수 없게 됐다. 메이저 컨텐츠를 제작하는 헐리우드의 큰 손 월트 디즈니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비극적, 인도주의적 위기를 고려해 러시아에서 영화 개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월트 디즈니는 오는 10일 ‘터닝 레드’, 5월 5일 ‘닥터 스트레인지 인 더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 5월 26일 ‘더 밥스 버거스 무비’ 등을 개봉할 예정이었다. 다만 현재 개봉 중인 신작들은 라이선스 기간이 끝날 때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러시아를 향한 보이콧은 영화 산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세계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와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은 러시아 내 서비스를 중지했다. 틱톡의 경우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넷플릭스는 “현장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공식 성명을 밝혔다. 러시아 내 넷플릭스 가입자는 약 100만명에 이른다.

주요 영화제도 발 벗고 나섰다. 이는 우크라이나영화아카데미(UFA)가 러시아 영화와 영화 산업에 대한 국제적인 보이콧 청원에 대한 응답이다. 오는 5월에 열릴 제75회 칸국제영화제는 물론 베니스국제영화제, 유럽영화아카데미(EFA) 역시 보이콧 지지를 밝혔다. 칸국제영화제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러시아 공식 사절단을 환영하거나 러시아 정부와 연관된 사람의 참석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발렌시아가 쇼 관객석에 놓여있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의 티셔츠(출처: 발렌시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 인스타그램 캡처)
발렌시아가 쇼 관객석에 놓여있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의 티셔츠(출처: 발렌시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 인스타그램 캡처)

◆ 파랗게 노랗게 물든 패션계

최근 F/W 컬렉션이 열리고 있는 패션계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지를 향한 손길을 보내고 있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쇼 시작에 앞서 우크라이나어로 시를 낭송했다. 500여개의 관객석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티셔츠가 놓여 있기도 했다. ‘프렌치 감성’으로 인정받은 이자벨 마랑은 자신의 쇼에서 아예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인 파랗고 노란 옷을 입었으며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쇼의 음악을 과감히 없애면서 ‘침묵의 패션쇼’로 진행했다.

영국의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 디자이너는 자신의 쇼에서 존 레논의 ‘Give Peace a Chance’를 마지막으로 틀면서 평화를 향한 목소리를 높였다. 베르사체는 SNS 계정에 ‘PEACE’ 글자만 적힌 사진을 올리면서 전쟁 반대에 나섰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에도 동참할 것을 밝혔다. 메종 키츠네는 자신들의 시그니처인 여우 로고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덧입혀 표현했으며 ‘유엔난민기구’에 기부할 것을 전했다. 폴로 랄프 로렌 역시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를 실시한다”고 밝히며 러시아 전역에 의류 판매를 중지했다. 이외에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샤넬, 에르메스 등은 러시아 매장을 입시 휴업하고 거래를 중지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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