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수업 전 칠판에 적힌 지혜롭게 사는 덕목 글귀를 받아쓰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수업 전 칠판에 적힌 지혜롭게 사는 덕목 글귀를 받아쓰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새 희망의 길이다. 힘차게 달려가자”

입학의 계절인 3월 초. 여든 다섯 살 늦깎이 중학생 박희문씨는 배움이란 문턱 앞에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양원주부학교를 졸업한 박씨는 지난 3월 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교장 이선재)에 중학교 1학년 최고령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일성여중고는 과거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40대에서 80대까지의 만학도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학교에 도착한 박씨는 제일 먼저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시간표 순서대로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곤 칠판에 적힌 ‘지혜롭게 사는 덕목 글귀’를 받아쓰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이 매일 아침에 저 글귀를 받아쓰라고 했어요. 어깨 탈골(4회)로 오른쪽 팔이 아파서 글 쓰는 게 힘들어요. 받아쓰는 과제가 있으면 제일 마지막으로 제출해요.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오늘날 젊은 세대에겐 배움의 기회가 선택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먹고살기 힘들어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배움의 때를 놓친 어르신들은 평생 못 배운 한을 품고 살아왔다.

“배고픈 시절 집이 너무 가난했어요. 이모네에 밥을 잘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충남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부모랑 떨어졌죠. 그때가 6살이었어요. 학교 다니려고 시도는 많이 해봤죠, 남산 아래 리라초등학교 자리에 야학(야간학교)이 있었어요. 산속에 나무때기 책상 있고...그런데 남의집살이 하는 입장이니까 낮에는 공부하러 못 다니고 밤에 몰래 다녔죠. 그러다 내가 12살인가... 6.25가 터졌지. 피난을 가야하니까 기차 꼭대기에 타고 조치원에 내렸는데 그때 한강 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학교를 못 다녔어요. 그 이후로도 형편이 여유롭지 못해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늘 그게 한이 되었어요. 그러던 중 아파트 지인의 소개로 학교(일성여중고)를 알게 돼 늦은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배우는 게 좋아서 노래 교실도 10년 넘게 다녔는데 학교 다니면서 노래자랑이나 장기자랑이 있으면 대회에 출전해서 수상하고 싶은 마음도 있네요.”

학교를 나서던 중 담벼락에 내걸린 현수막 문구가 눈에 띄었다.

“20이든 80이든 계속 배우는 사람은 젊은이고 20이든 80이든 배우기를 그만두는 사람은 늙은이다.”

스스로 되묻게 됐다. “나는 젊은이인가. 늙은이인가?”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와닿는 시간이었다. 만학(晩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각반 교실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최고령 입학생인 박씨가 꽃다발을 받고 이선재 교장과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각반 교실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최고령 입학생인 박씨가 꽃다발을 받고 이선재 교장과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수업 전 책상 서랍에 시간표 순서대로 교과서를 넣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수업 전 책상 서랍에 시간표 순서대로 교과서를 넣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수업 전 공책에 적어둔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수업 전 공책에 적어둔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오전 수업 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한문 공부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5일 일성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오전 수업 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한문 공부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수학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에 집중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씨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수학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에 집중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희문(85)씨가 지난 4일 오전반 수업을 마친 뒤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칠판에 적힌 지혜롭게 사는 덕목 글귀를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박씨의 환한 미소 속에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희문(85)씨가 지난 4일 오전반 수업을 마친 뒤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칠판에 적힌 지혜롭게 사는 덕목 글귀를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박씨의 환한 미소 속에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천지일보 2022.3.11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키워드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