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하려는 외국인 참전 희망자 일부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기 시작했다며 이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혔다. 2022.03.04.
[키이우=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하려는 외국인 참전 희망자 일부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기 시작했다며 이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혔다. 2022.03.04.

러시아 침공 시작 뒤 처음 연 기자회견에서 밝혀
군복 티셔츠 차림에 면도도 안한 초췌한 모습이지만
활기찬 모습으로 정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음을 강조
탈출한 고위직 한 사람 없이 수십명이 회견장에 배석
모래주머니 쌓인 집무실 창문엔 시가전 대비한 총좌도

면도도 하지 않은 채 군복 티셔츠를 입은 초췌한 모습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래주머니로 방어막을 친 자신의 집무실로 언론인들을 초청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기지회견장의 분위기와 젤렌스키 대통령 표정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전의지와 평화에 대한 갈망을 전했다.

대러 항쟁의 상징이 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활기찬 모습으로 브리핑을 하면서 러시아와 진행중인 협상 내용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죽음에 대한 공포로 솔직하게 밝혔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의자를 끌어 당겨 기자들에게 다가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에서 전쟁 발발 일주일이 지난 지금 키이우(키예프)의 상황이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지만 그의 정부는 잘 돌아가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탱크들이 주요 도시와 수도를 압박하는 속에서도 들끓어오르는 분노에 찬 우크라이나 일반 시민들의 저항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힘있고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라면서 "우리 국민들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탈출한 고위관리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수십명의 보좌관들이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하는 등 서방 지도자들에게 추가적인 군사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한편으로는 러시아 지도부와 협상도 추진중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떤 문제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협상대표 미하일로 포돌략은 뒤에 2차 회담에서 민간인이 집중전투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휴전 통로를 설치하는데 합의했지만 다른 진전은 없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측은 오래 전부터 답변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질문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점이 현재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 대목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양보할 의사가 있다고 했고 우크라이나 주권을 위협하는 조건에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타협할 수 없는 대목도 있다"면서 "우리가 '우리 나라를 가져가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제안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기자들은 미니밴을 타고 콘크리트와 H빔 철강으로 만든 탱크 저지용 장벽이 설치된 교차로와 도로를 지나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했다. 나무에 가려진 사무실 건물과 우아한 19세기 아파트 건물이 있는 정부청사 거리는 대체로 조용했고 장갑차가 도로를 막고 있었다.

밴이 한 건물 중정을 지나 대통령 집무실 건물 뒷문으로 들어갔다. 건물안에서 경비원들이 손전등을 들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기자들을 안내했다. 복도에는 군인들이 가득했다.

창틀에는 모래주머니가 가득 쌓여 있었다. 문가에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거리를 행해 사격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시가전이 다가올 때를 대비한 듯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키이우시의 방어준비에 대해 말하면서 "직접 만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협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 3시간 정도 잔다고 했다. 그의 뺨은 피로로 처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활기차고 정력적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말을 이어갔다.

브리핑은 일상적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내기 위해 기자회견장에서 열렸지만 하얀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는 창가에는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지켰다.

그는 자신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전쟁 전에도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직접 만나기를 거부했었다.

"푸틴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가 푸틴에게 말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 전쟁을 멈출 수가 없다."

전쟁 상황과 러시아군이 국내에 반전 정서를 자극하지 않도록 참전 사망자들 송환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전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건 악몽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45세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인들 상당수가 18세, 19세라면서 자기 딸과 비슷한 나이로 "내 자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내린 결정 때문에 이들이 군복을 입은 채 죽고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슐츠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방국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군이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공격이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지도부가 다른 동유럽국을 침공하고 새로운 "베를린 장벽"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방의 러시아 압박과 노르트 스트림2 파이프라인 건설을 동시에 추구한 독일 당국자들을 비판했다. 독일에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계획이지만 현재는 취소된 상태다.

정치에 대해 날카롭게 풍자하던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거듭 방송에 출연해 저항을 촉구하고 지원을 요청하며 포위된 키이우에 머무는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용기와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 됐다면서 그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의 탈출 주선 제안을 거부한 젤렌스키는 "전세계가 뭉쳐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안에 대해 그는 "비행기 좌석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답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관계 유지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꺼리고 이스라엘산 부품이 포함된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차단한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를 비난했다. 그 자신 절반 유태인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주 러시아 미사일이 키이우의 유대인 학살 기념관 바빈 야르를 공격해 다섯명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미사일은 TV 방송탑을 겨냥한 것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사람들이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된 우크라이나 국기를 두르고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가 도덕심을 발휘해야할 때라면서 "지금 모든 것이 시험받고 있다. (베네트 총리)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두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을까봐 겁이 나느냐는 질문을 받자 누구라도 그렇다고 답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또 자식들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라면 아마도 자원병으로 나서 소총을 들었을 것이기에 어차피 위험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소총을 들기보다 군인들에게 식량을 전달하는 일을 할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다른 사람만큼 총을 잘 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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