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출처: 연합뉴스)
이어령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민희 수습기자] 암 투병 중인 노(老)학자가 마루에 쪼그려 앉아 발톱을 깎다가 눈물 한 방울을 툭, 떨어뜨렸다. 멍들고 이지러져 사라지다시피 한 새끼발톱, 그 가여운 발가락을 보고 있자니 회한이 밀려왔다. “이 무겁고 미련한 몸뚱이를 짊어지고 80년을 달려오느라 니가 얼마나 힘들었느냐. 나는 왜 이제야 너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냐.” - 눈물 한 방울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26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고(故) 이 장관은 생전 문학평론가‧소설가‧수필가‧언론인‧교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자 한국의 대표적 석학으로 불렸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55년 교내지인 문리대학보에 이상론을 발표한 후 1956년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 ‘비유법논고’가 추천돼 등단했다. 같은 해 발표한 ‘우상의 파괴’는 문단 원로들의 권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해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사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평생을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0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을 창간했고 ‘이상문학상’을 주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을 연출했다. 1990년~1991년 노태우 정부 때 문화부 초대장관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 전 장관은 2017년 암이 발견되면서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으나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등 저서 집필에 몰두했다. 그가 펴낸 저서로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것이 한국이다’ ‘세계 지성과의 대화’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 60여권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검사를 지내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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