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0월 18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가운데)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경제연합 합의에 서명한 후 연설하고 있다. 그 해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소련 공화국들의 독립을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도자들은 소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출처: 뉴시스)
1991년 10월 18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가운데)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경제연합 합의에 서명한 후 연설하고 있다. 그 해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소련 공화국들의 독립을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도자들은 소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체 왜 이럴까. 많은 전문가들과 서방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동유럽에 걸친 러시아의 세력을 회복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의 관심은 러시아군이 서성이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쏠려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야망은 그 이상이라고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냉전 체제의 결과를 다시 그리길 원한다.

◆“푸틴, 소련 붕괴 개인적 상처로 받아들여”

푸틴 대통령은 전날 밤 대국민선언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규모 군사 작전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발표, 그리고 파병을 지시한 후 냉전 이후의 유럽 안보 지도를 다시 그리고 싶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는 한 시간에 걸쳐 작심 발언을 내뱉었다. 지난 30년간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대우가 불만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지난 7월 발간된 푸틴 대통령의 장문의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은 모두 9세기 유럽에서 가장 큰 국가인 고대 루스의 후손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두고서는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대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안보 위기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 나토가 독일 동부로 군사력을 확장하기 전인 1990년대까지 군사력을 축소하길 바라고 있다.

요약하자면 푸틴 대통령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한 많은 안보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서 그는 이 사건을 두고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다.

지난 세기 지구촌이 홀로코스트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었음에도 푸틴 대통령은 이 시대를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있다. 소련 제국이 붕괴되며 경제가 침체되고 러시아가 서방의 원조에 의존하고 내부는 혼란했고 반면 서방은 냉전의 승리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메리 사로트 역사 교수는 WSJ에 “이 시절은 푸틴 대통령의 개인적인 경험의 일부였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에 주둔하던 KGB 공작원이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1990년 붕괴 직전의 소련에 다시 끌려갔다. 사로트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소련 시절처럼 러시아 주변에 완충지대를 만들려 한다”면서 “이를 통해 미국과 나란히 초강대국으로 서고자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일까. 푸틴 대통령은 다른 나토 국가들보다 미국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담당 보좌관이었던 피오나 힐은 “러시아는 강압적인 권력을 갖길 원했고,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힐은 “푸틴에게는 (냉전 결과가) 30년간의 역사적으로 잘못된 사건이 아니라 러시아, 소련, 러시아 제국에게 수 세기 동안 가해진 상처”라고 설명했다.

2002년 5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출처: 뉴시스)
2002년 5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출처: 뉴시스)

◆1990년대 서방 무능도 영향… 독일 통일부터 시작된 서사

1990년대를 돌이켜 볼 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형편없이 처리한 사실이 분명하고 냉전 승리주의가 과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푸틴 대통령을 자극했을까.

소련 붕괴 당시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였던 로드리크 브레이스웨이트는 “서방 외교가 1990년대 오만하고 무능했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지만 푸틴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소련 붕괴의 굴욕, 나토의 확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다”라며 “수백만명의 러시아인들이 그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낀다”고 말했다.

러시아 주민들이 이같이 생각하게 된 이유도 있다.

서방이 러시아를 어떻게 속였는지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서사는 독일 통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러시아 측에 따르면 1990년대 독일 통일에 대한 논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치인들과 관리들이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나토가 1997년 당시 동맹의 동부 국경보다 더 멀리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로트 교수는 이런 주장의 근거를 조사했고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이 1990년에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제안을 발견했다. 1997년 나토는 군대를 소련 국경으로 이전할 의사가 없다고 선언했다.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도 러시아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나토가 동진으로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이 나토가 동독을 포함하길 원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이런 보증을 법적 형식으로 받은 적은 없다. 결국 독일을 통일시킨 1990년 협정은 나토를 동독 영토로 확장했다.

거짓말은 거짓말로 되갚아졌다.

1994년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기존 국경을 존중한다”와 “무력의 위협이나 사용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하며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도움을 줬다.

1990년 9월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핀란드 헬싱키 정상회담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990년 9월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핀란드 헬싱키 정상회담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푸틴 감 잃었나?… “너무 멀리 왔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이제 ‘감’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에도 벼랑 끝 전술에 능숙했다. 브레이스웨이트는 “그(푸틴)는 2008년 조지아와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다시 언제 멈춰야 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두 번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푸틴 대통령이 판돈을 크게 올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가 요구하고 있는 핵심적인 안보 협정은 실제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실제 침공할 경우에도 위험 부담이 크다.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물론 우세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적대적인 우크라이나 대중을 오랫동안 잡아두는 것은 수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다른 부분을 떼어내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도 서방의 강력한 제재를 촉발할 것이다. 2024년 재선을 앞둔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여론이 악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푸틴 대통령이 크렘린궁에 점점 더 고립되면서 그가 어디서 조언을 얻고 있는지에 의문은 더 커지고 있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오랜 기간 집권한 또 다른 지도자인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와 푸틴 대통령을 비교했다. “푸틴은 1989년과 1990년 대처 총리가 그랬듯이 정치적 감각을 잃은 것 같다.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아는 본능이 사라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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