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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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격인 조선시대 감사(監司)를 순상(巡相)이라고도 불렀다. 백성들은 높은 집인 합(閤)에 상주한다고 해 합하(閤下)라는 호칭을 썼다. 백성들이 민원을 감사에게 올릴 때는 글 서두에 ‘순상 합하’라고 하며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하는 것이 상례였다.

감사는 정2품의 품계를 지닌 대신 가운데서 선발해 파견됐다. 임금을 대신해 한 도(道)의 사법, 행정을 처결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감사 가운데 훌륭한 인물도 있었지만 본연의 일보다는 주색잡기나 탐관이 돼 나중에 파직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 세종 때 문신 정갑손(鄭甲孫)은 예조참판, 대사헌, 예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친 인물로 청렴하고 강직했다. 함경도 관찰사로 있던 시절 일화가 재미있다. 고을 관리를 뽑는 향시(鄕試)에 자신의 아들이 합격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고시관(考試官)들이 감사에게 잘 보이려고 합격자 명단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정 감사는 ‘평소 내 아들이 학업에 충실하지 않은 것을 아는데, 어찌 요행으로 임금과 백성을 속일 수 있겠는가. 이건 직무를 태만한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담당 시험관을 파직하는 동시,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지웠다.

인조 때 감사 윤지경(尹知敬)도 신도비를 보면 청렴했던 인물로 기록 된다.

‘… 사람들이 금옥(金玉)을 보배로 여겼지만 그는 기와장이나 돌멩이로 보았고, 사람들이 팔진미를 먹고 즐겼지만 그는 채소와 나물만을 먹었으며, 사람들은 고관대작을 구하려고 있는 힘을 다했지만 그는 높은 벼슬이 두려워서 마치 겁쟁이와도 같이 뒤로 슬슬 피했다…(하략)’

방랑시인 김삿갓의 일화에 등장하는 함경감사 윤모는 탐관오리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돈 많은, 부자(富者)들을 한 사람씩 불러서 볼기를 치며, ‘네 죄(罪)는 네가 알렸다’하고 다그친다. 그러면 부자들은 수만냥씩 바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매관매직이 극성해 감사 가운데는 탐관오리들이 많았다. 많은 돈을 들여 감사가 됐으니 본전을 뽑기 위해 악랄한 수법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짰던 것이다, 권세가들에 대한 상납의 고리가 있어 수탈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강진 귀양지에서 눈물로 ‘감사론(監司論)’을 지었다. 그는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이 작은 물건을 훔치는 것은 도둑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온갖 위세를 부리고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는 감사를 지칭해 큰 도둑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은 온갖 도둑이 세상에 가득하다. (중략) 그런데 감사(監司)·수사(水使)·병사(兵使)들은 도둑질하는 사람과 한 패거리가 돼 숨겨주고 공개하지 않는다. 그 지위가 높을수록 도둑질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중략) 그런데 유독 굶고 또 굶은 끝에 좀도둑질 조금 한 사람이 이런 큰 곤욕을 당하게 되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그래서 내가 통곡한다.(하략)…’

지금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막대한 선거자금이 필요하다. 공천과정에서도 금품이 오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제도적 악순환이 당선 이후 현직에서 부정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온갖 이권에 개입해 부정한 돈을 수수하고 재판을 받거나 구속된 사례가 많다. 공천과 선거 제도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자치단체장들의 복무 자세와 가치관도 달라져야 한다. 재임 중 특권 의식과 갑질이 있었다면 결국 숨길 수가 없다. 그것이 나중에 파국의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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