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추연의 학설을 처음 접하는 왕이나 제후들은 큰 충격을 받아 감화되었고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왕과 제후들이 다투어 그를 초빙했다.

추연은 제나라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가 양나라로 가자 혜왕이 교외까지 직접 영접을 나와 국빈으로 대접하는 예의를 갖추었다. 또 조나라에 갔을 때 평원군은 그가 지나는 길 앞에서 걷지 않았고 추연이 앉는 자리의 먼지를 손수 털어서 정중히 접대했다.

그가 연나라에 가자 소왕(기원전 311~279년)이 비를 들고 앞에 서서 안내하고 제자의 자리에 제자들과 나란히 앉아 추연의 가르침을 받고자 원했다. 또 소왕은 갈석궁을 짓고 친히 그곳에 나가서 추연의 가르침을 받았다. 추연의 저서 중 ‘주운편’은 그곳에 머물며 저술한 것이다. 추연은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이처럼 존경을 받았다.

공자가 채․진나라에서 푸대접을 받던 일과 맹자가 제와 양나라에서 곤궁에 빠졌던 것과는 사정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주나라 무왕이 인의에 따라 포악한 은나라 주왕을 쓰러뜨리고 왕위에 올랐는데 백이는 굶어 죽으면서도 결코 주나라의 곡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위나라 영공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군의 진영 세우는 방법을 공자에게 물었으나 공자는 답하지 않았다. 양나라 혜왕이 조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전략을 꾸미고 있을 때였다.

맹자는 주나라 ‘고공단보’가 야만족의 공격을 받았을 때 전쟁으로 인한 살상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과 근거지인 ‘빈’을 떠난 훌륭한 일을 칭찬했다. 백이나 공자, 맹자의 그러한 행위가 세상의 풍조에 아첨하고 영합하려는 뜻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도대체 네모진 단면을 둥근 구멍에 집어넣으려고 한들 그것이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고 사마천은 반문했다.

현인이라고 불리는 이윤(伊尹, 은나라 초기 전설상 인물)도 가마솥을 등에 지는 요리인이 되어 은나라 탕왕을 찾아가 어려움에 처한 탕왕을 격려하여 왕업을 완성시켰다. 저 백리혜도 수레가 지나가는 길에서 소를 먹였으나 진나라 목공의 덕택으로 패자가 되었다.

이런 일들은 처음에는 영합하고 그 뒤에는 상대방을 위한 길로 인도한 힘이 되었다. 추연은 전통의 선에서 거리가 먼 학설을 펼쳤지만 이것도 역시 소에게 먹이를 주고, 가마솥을 등에 진 현인으로 통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추연을 비롯하여 제나라 수도인 임치 직문 근처에 모였던 순우곤, 환연, 접자, 전병, 추석 같은 학자들은 모두 책을 저술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문제를 논하여 왕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중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이다.

그는 박식하여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학문적으로는 어떤 학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제후들의 중신 중에 제나라 안영을 제일 존경하였다. 어떤 이가 순우곤을 양나라 혜왕에게 소개하여 만난 일이 있었다. 혜왕은 측근들을 물리치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번을 만났는데도 순우곤은 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상한 혜왕은 그를 소개한 사람을 꾸짖었다.

“그대는 순우곤을 관중이나 안영이 따를 수 없는 인물이라고 칭찬했다. 그런데 그를 만나 본 결과 얻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자기와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왕에게 꾸중을 들은 사람이 순우곤에게 그 말을 전하자 그는 “내가 처음 왕을 뵈었을 때 왕은 말을 타고 달리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음에 뵈었을 때는 노래에 마음이 끌려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개한 사람이 혜왕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순우곤 선생은 참으로 성인이다. 내가 처음 선생을 만났을 때 내게 명마를 바친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 그 말을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오셨을 때 가수를 바친 자가 있었는데 미처 그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을 때 선생이 오셨다.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지만 마음은 온통 말과 가수에게 끌려 있었다.”

그 뒤 순우곤은 왕과 만나 3일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자루한 줄 몰랐다. 왕은 그에게 재상의 지위를 주려고 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순우곤은 황금과 보석, 비단은 선물로 받았으나 일생을 벼슬은 하지 않고 지냈다. 제나라 왕은 순우곤을 비롯한 모든 학자들에게 열대부의 칭호를 내리고 수도의 경치 좋은 곳에 그들을 위해 큰 집을 지어 각 나라의 제후들에게 천하의 어진 자들을 모았다는 본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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