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블록. (출처: 연합뉴스)
점자블록. (출처: 연합뉴스)

“장애인 편의시설 필요 없다 생각해”

시공사 “강동구청 허가대로 했을 뿐”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장애인 입주민의 권리와 인권이 무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존 단지를 새로 짓는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을 철거하면서다. 흔히 점자블록이라고 불리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은 시각장애인이 위치와 방향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설물이다.

4일 장애인인권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의 김철환 활동가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고덕아르테온’이 재건축되면서 기존 단지 내에 있던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도 철거된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내에는 점자블록이 법으로 규정된 승강기 앞과 주 출입구 등에만 일부 있어 시각장애인들은 단지 입구부터 아파트까지 지팡이에 의지해 가야 한다. 또 재건축 과정에서 단지 주변에 있던 점자블록을 철거해, 장애인들은 복지관으로 이어지는 500m 남짓한 거리를 30분이 넘게 돌아가야 한다.

김 활동가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서 장애인 입주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게 당연한가”라며 “아파트에 장애인이 거주할 경우 이를 위해 편의시설을 만드는 것은 소비자를 존중하는 당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시공사들은)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점자블록 등 장애인 편의시설은 만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법을 따지기보다 ‘입주자의 편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규탄했다.

앞서 입주민들은 점자블록을 유지해달라고 재건축조합 측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강동구에 민원을 넣었으나 구청에선 “사유지라 어쩔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공동주택에서는 점자블록 의무 설치 장소를 승강기 앞과 주 출입구 등으로 제한하고 있어 설치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인권단체는 지난해 12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조합과 건설사 등이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고려하지 못한 조치 때문에 복지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불편을 겪는 등 차별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고덕아르테온은 현대건설과 DL이앤씨가 컨소시움을 구성, 4066세대 규모로 건설된 대단지다. 준공은 지난 2020년 2월에 끝났다.

해당 아파트를 재건축한 시공사들은 설계를 받은 대로 시공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DL이앤씨 관계자는 “해당 아파트는 현대건설이 주관하는 컨소시움으로 재건축에 들어간 아파트로 각자의 건설 영역이 정해져 있다”며 “확인 결과 DL이앤씨 측에서 지은 부분에는 점자블록을 옮긴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본사는 재건축조합이 설계한 대로, 강동구청에서 인허가를 내준 대로 시공했을 뿐”이라며 시공사에는 책임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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