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신화/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신화/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와의 무력 충돌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외교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안보요구를 넘어 “대화가 계속 되기를 바란다”고 했으며 서방 세계가 응하지 않을 경우 ‘군사기술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이전의 위협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5시간 동안 회담을 가진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달여 만에 처음 나온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관련 공식 발언은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헝가리는 나토 회원국 중 러시아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공포를 촉발시킨 위기 상황에서 긴장을 약간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임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최소한 한 차례의 외교전을 더 벌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나토, 러시아 핵심 우려 무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먼저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자신의 안보요구에 대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대응을 검토하고 있으나 주요 우려사항은 무시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헝가리) 총리에게 러시아의 근본적인 우려는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우리는 우리의 세 가지 핵심 요구사항에 대한 적절한 조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세 가지 요구사항은 나토에 구소련 유럽 국가들을 가입시키지 않는 것과 러시아 국경 근처에 타격 무기 시스템 배치를 철수하는 것, 나토군 유럽 군사 기반 시설을 러시아-나토 창설법이 생긴 1997년으로 복귀하는 것 등이다.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포함,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요구가 나토의 개방정책에 위배되는 것이며 협상의 핵심이 아니라고 밝혀왔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러시아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자주 언급하는 비판 중 하나를 되풀이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며 “우리를 무력충돌로 끌어들인 다음 유럽에 있는 그들의 동맹국들이 우리에게 가혹한 제재를 시행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 입장을 거듭 밝히며 우크라 정부가 2014년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를 군사력으로 탈환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곳은 러시아 주권 영토고 문제는 종결됐다”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고 군사작전을 시작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럼 러시아는 나토에 맞서 싸워야 하는 건가? 여기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 있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포함해 모든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고려된다면 교착상태 종식을 위한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지만 결국 해결책을 찾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후 크렘린궁은 두 사람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채 샴페인 축배를 즐기는 장면을 공개했다. 오르반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몇 주 동안 협상할 시간이 있다. 어떤 일이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키예프=AP/뉴시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우크라 수도 키예프에서 우크라 긴장 사태와 관련해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키예프=AP/뉴시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우크라 수도 키예프에서 우크라 긴장 사태와 관련해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앞두고 정상 회담에 분주한 푸틴

이 같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백악관은 러시아의 외교적 해결 의지를 확인하면서도 현재의 긴장 원인은 러시아가 제공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여우가 닭장 꼭대기에서 닭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이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해 러시아를 여우로, 닭을 우크라이나로 비유를 든 것을 다시 언급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전화통화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미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CNN방송에 라브로프 장관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관리들은 전날 러시아의 안보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추가 안보 회담을 위한 길을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 지난 주 크렘린에 보낸 제안서에 대한 ‘서면 후속 조치’를 받았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가 아직 미국에 주요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며 “혼동이 있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한 주요 답변은 아직 전달되지 않았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존슨 총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총을 겨누고 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정치적, 인도주의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도 통화를 했으며 가까운 시일 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대면 회담도 계획됐다고 밝혔다. 2일에는 푸틴 대통령과 존슨 총리가 만날 예정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모스크바 방문 준비 중에 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4일 올림픽 개막식 당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다.

NYT는 “크렘린궁은 비록 서방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러시아가 전 세계에 친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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