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이봉창의사 묘소에서 이봉창의사선양회가 참배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근 경인종합일보 논설위원, 임완영 금과은 대표, 김동영 회장, 정종홍 UPF 용산지부장, 한성순 catch a  dream대표, 서영철 센터장 ⓒ천지일보 2022.1.9
8일 이봉창의사 묘소에서 이봉창의사선양회가 참배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근 경인종합일보 논설위원, 임완영 금과은 대표, 김동영 회장, 정종홍 UPF 용산지부장, 한성순 catch a dream대표, 서영철 센터장 ⓒ천지일보 2022.1.9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이봉창의사선양회(총재 이상면, 회장 김동영)가 이봉창 의사 의거일인 지난 8일 효창공원에 안장된 이봉창의사 묘소를 참배하고 이 의사의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이봉창의사선양회 김동영 회장을 비롯해 김동근 경인종합일보 논설위원, 임완영 금과은 대표, 정종홍 UPF 용산지부장, 한성순 캐치 어 드림 대표, 서영철 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김동영 회장은 효창공원 묘역(삼의사 묘, 백범 김구 묘, 임정요인 묘)을 돌며 참석자들에게 효창공원의 유래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 등을 설명하며 안내했다.

효창공원은 원래 5살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와 몇 달 후 죽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무덤으로 효창원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두 무덤은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당했고 이름도 효창공원이 됐다. 현재는 백범 김구의 묘소를 비롯해 삼의사인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묘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이동녕, 군사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이석의 묘소가 있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침체된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렸고, 특히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가 성공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의사는 1932년 9월 30일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일본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6월 30일 김구 선생에 의해 이 의사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국민장으로 용산구 효창공원(효창원로 177-18)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특히 이 의사는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유일한 인물로, 일제에게는 최고의 대역죄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봉창 의사 일가족과 친인척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가족과 친가들까지 같은 죄를 뒤집어쓰면서 숨어 살아야만 했다. 더구나 의거가 실질적인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저평가되면서 다른 의사(독립운동가)들의 기념사업보다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생가도 복원되지 못하고 기념관조차 없었는데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관심과 노력으로 지난 2020년 10월 21일 이 의사의 성장지인 효창공원역 부근에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이봉창의사기념관)이 건립됐다.

김동영 회장은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봉창 의사는 원효로2가에서 출생하며 17세때 효창동 118-1번지로 이사하며 용산역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의거할 때까지 그곳에서 사셨는데 늦게나마 성장지 부근에 기념관을 건립하게 돼 다행이다”며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노고에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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