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후 모습(제공: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후 모습(제공: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어좌 뒤 ‘일월오봉도’

1840년대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

軍 물품에 중요 자원이었던 ‘낙폭지’

조선 후기 종이, 왕실에서도 귀해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180년 전 과거 시험 탈락자들은 알았을까. 자신들의 시험지가 병풍 뒤에서 발견될 것을.

19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1840년에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낙폭지가 발견됐다.

이번에 보존처리를 진행한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 아래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 파도치는 물결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해 조선 왕실에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왕의 공간에 설치하는 그림이다.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는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당가(唐家, 어좌와 좌탑을 둘러싼 조형물)의 어좌 뒤에 설치된 4폭 병풍이다. 창덕궁 외에도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에도 ‘일월오봉도’가 있었다.

이번에 작업한 ‘일월오봉도’는 여태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됐던 인정전에서 노출되면서 화면이 터지거나 안료가 들뜨고, 구조를 지탱하는 병풍틀이 틀어지는 등의 손상을 입어 지난 2015년에 옮겨 2016년부터 보존처리를 시작해 지난해 말 작업을 마쳤다. 여태 다섯 차례 보수했으나 이번에는 전면 해체까지 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해체 과정에서 화면-배접지-1960년대 신문지-시권-병풍틀의 순서로 겹쳐진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960년대에 ‘일월오봉도’를 처리할 때 제작할 당시인 조선시대 때 사용했던 기존의 병풍틀을 재사용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는 기존 병풍틀이 충해와 틀어짐 등의 구조적인 손상으로 재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종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새로 제작했다.

일월오봉도 병풍틀에서 발견된 시권(제공: 문화재청)
일월오봉도 병풍틀에서 발견된 시권(제공: 문화재청)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발견한 특이점은 병풍틀의 첫 번째 배접지로 사용된 여러 장의 시권 중 총 27장이 1840년에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낙폭지(탈락자의 답안지)라는 것이다. 식년시는 조선시대에 3년마다 정기적인 치러진 과거 시험으로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이를 통해 조선 왕실에서 ‘일월오봉도’를 제작할 당시 낙폭지를 재활용했다는 점과 제작 연대가 1840년대 이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낙폭지는 다양한 곳에 활용됐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에 실린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병풍 배접 시권의 내용과 의미’에서 윤선영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교수는 “낙폭지란 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로, 과거 시험을 본 후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최종 결정되면 합격한 시권은 응시자에게 나눠 준 반면, 불합격한 시권은 돌려주지 않고 재활용했다”며 “대개 서울과 지방의 시소에서 비변사로 보내면 비변사에서 분배해 다양한 활용처로 보내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승정원일기’나 ‘문희묘영건청등록’, ‘천의소감찬수청의궤’ 등을 통해 비변사로 보내진 낙폭지는 군영의 병사들이 추위를 막는 데 필요한 여러 장비를 마련하고 종이 포갑·화전·지의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또 조선시대 국방에 관련된 물품인 유의, 기치 등에 활용됐던 낙폭지는 상당히 중요한 물자였다. 또 지난 2016년 보존처리를 위해 조사했던 ‘활옷’에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넣은 종이심에서도 볼 수 있었다.

윤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낙폭지에 대해 “주로 식년시의 답안”이라며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응시자들이 자비로 시지를 직접 마련해 가지고 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권력 가문의 자제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더욱 좋은 종이를 가지고 오려는 폐습이 생겨 ‘속대전’에서 이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당시 왕실에서조차 낙폭지를 재활용했을 정도로 조선 후기 당대의 종이 물자가 매우 부족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며 “출방 이후 낙폭지가 수집돼 실제 재활용이 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특정할 수 없기에 ‘일월오봉도 병풍’은 1840년 즈음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대략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전 모습(제공: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전 모습(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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