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발부 가능성 높아 언론노출 피하려"
검찰에 부분협조…정상참작 제스처일수도

(서울=연합뉴스) 미궁에 빠진 부산저축은행그룹 로비 의혹을 규명할 `키맨'으로 지목된 로비스트 박태규(71)씨가 31일 오후 열릴 예정이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돌연 포기하자 갖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고위공직자 로비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수수했다는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온 박씨가 심경변화를 일으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칠순을 넘긴 나이에 5개월간의 해외 도피생활로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상태에서 검찰 수사로 인한 심리적 중압감까지 겹치자 더이상 견디지 못해 백기를 들고 투항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씨는 수사 초기인 지난 4월 초 캐나다로 출국할 때만 해도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에게 "재기하려면 내가 (검찰에서) 거론되지 않게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란 말을 남겼을 정도로 자신만만했고, 폭넓은 인맥을 동원하면 현 상황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박씨는 검찰의 집요한 설득과 전방위 송환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28일 오후 자진귀국했다. 사실상 제발로 들어온 때부터 `무장해제'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지만 박씨의 `입'은 여전히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여권실세, 구여권 등에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는 그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접촉한 정관계 인사 중 로비 대상을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범위를 차츰 좁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바짝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박씨의 예민한 변화에도 여전히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피의자심문을 포기한 것을 심경변화의 전조로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박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15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았다는 혐의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다투는 상황"이라며 "피의자심문을 포기한 것은 법정에서 직접 소명을 해도 구속영장 발부를 막기 어렵고 불필요한 언론 노출을 피하는 것이 낫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박씨가 이미 자진귀국을 선택하면서 검찰 수사에 어느 정도 선까지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피의자 심문을 포기한 것은 형사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한 정상참작용 제스처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 5월 말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검사무마 청탁과 함께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은진수(50) 전 감사위원이 구속될 때도 피의자심문을 포기해 유사한 해석을 낳았다.

한 검찰 간부는 "박씨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지만 구치소 안에서도 신문을 달라고 해서 관련 기사를 챙겨본다"며 "만만찮은 인물이어서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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