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 신정동 정촌가요특구 내 망부상. ⓒ천지일보 2021.12.28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 신정동 정촌가요특구 내 망부상. ⓒ천지일보 2021.12.28

정읍시 신정동 정촌마을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
부부나무·1700년 샘 현존
70~80년 정읍마을 전시관
정읍명물 궁중탕약 ‘쌍화차’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소서 시장에 가 계시는지요. 위험한 곳을 다닐까 두렵습니다. 어느 곳에나 놓으십시오. 당신 가시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행상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산 바위에 올라 진흙탕 물에라도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달님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가요로, 오늘날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의 일부다.

본지는 지난 27일 백제가요 정읍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지역에 전해오는 설화, 민속자료, 소설가 문순태의 ‘정읍사-그 천년의 기다림’을 스토리텔링 해 마을을 조성한 ‘천년 부부 사랑 정촌가요특구’ 테마파크를 찾았다.

전북 정읍시는 지난 2005년 12월 전라북도로부터 백제가요 관광지로 지정받아 사업비 315억을 들여 2007년 정읍시 신정동 727일대 14만 8760㎥ 부지에 착공해 2019년 10월 25일 ‘천년부부사랑 정촌가요특구’ 테마파크를 조성·준공했다. 전체 건평은 1983㎥이며 이중 전시장 건평은 1653㎥ 정도다.

테마파크 전통현관문에 들어서면 두 손모아 남편의 안녕 귀가를 바라며 간절히 기다리는 월아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 신정동 정촌가요특구에 70~80년대 마을을 테마로 조성된 전시실 앞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28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 신정동 정촌가요특구에 70~80년대 마을을 테마로 조성된 전시실 앞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28

◆70~80년대 정읍마을 전시관

전시관 입구에는 맨 먼저 BTS의 입체 형상이 탐방객을 반긴다. 왼쪽 제1전시관 정읍사 방에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며 무사 귀환을 바라는 아내의 벽화와 정읍사의 발원지인 정해마을 소개, 백제가요 정읍사에 관한 이야기 등이 눈에 띈다.

또 제2전시관 대중가요방은 정읍의 70~80년대 마을이 벽화와 테마별로 조성돼 있다. 특히 상고시대부터 BTS까지 우리 현대가요의 연대표, 정읍 영화관, 마을 거리 모습, 추억의 다방, 시대별 노래 듣기 등 이 시대를 살았다면 반가운 미소와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수십 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감동을 죄다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넥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구슬치기 마을 모습과 같다고 할까?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 신정동 정촌가요특구 인근 정자우물. ⓒ천지일보 2021.12.28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 신정동 정촌가요특구 인근 정자우물. ⓒ천지일보 2021.12.28

◆‘정읍’ 이름 정촌 우물서 유래

정읍시 신정동 정해마을은 백제가요 정읍사의 발원지다. 백제 시대 정촌현(井村縣)으로 당시 고을 터로 알려진 정해마을에서 지금의 지명인 ‘정읍(井邑)’이 생겨났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있었던 정자(井字)우물 때문에 샘바다 또는 새암바다라고 불려왔다. 1700년 전부터 있었던 바로 우물에서 정촌이 시작됐고 정읍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생겨났다.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던 이 우물은 현재도 콸콸 흐르고 있다.

큰 새암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이곳은 온통 바다였다. 산에서 수도해 신통력을 가진 여자가 이곳을 지나다가 주변의 산천경개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이에 감탄해 “이런 곳에 마을이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또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시암(샘)도 하나 만들어 주고 가야겠다”며 내장산 망해봉에 올라 큰 바위 하나를 치마폭에 싸 가져다가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이곳 한가운데 그 돌을 던졌다. 순간 바닷물이 막히자 지금과 같은 분지 땅 마을이 생기게 됐다고 전해진다.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백제가요 정읍사의 발원지인 정촌현의 옛터인 정해(井海)마을에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겨오는 부부나무. ⓒ천지일보 2021.12.29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백제가요 정읍사의 발원지인 정촌현의 옛터인 정해(井海)마을에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겨오는 부부나무. ⓒ천지일보 2021.12.29

◆가정·마을 번영의 수호신 ‘부부나무’

백제가요 정읍사의 발원지인 정촌현의 옛터인 정해(井海)마을에 350여년간 가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을 바라보는 나무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부부나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오고 있다.

조선 숙종 2년(1676년)에 이 고을에 사는 안윤형이란 사람이 아들 4형제가 병과에 급제하자 큰 잔치를 열고 우물가에 기념으로 팽나무와 버드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여성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와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남성을 상징하는 팽나무는 자라면서 서로 끌어안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데 보는 이들은 이 부부나무의 형상이 마치 행상 나간 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다리는 백제가요 정읍사 여인(망부석)의 애절한 사랑의 기운에 신비감마저 감돈다고 전한다.

그 후 정해마을은 결혼한 부부가 백년해로하고 금실이 아주 좋아 지금까지 이혼한 가정이 없다고 한다. 또 주변에는 그때 같이 심었다는 악수나무(팽나무, 새나무)와 형제나무(팽나무)가 있어 이웃끼리 화목하고 형제간 우애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마을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정월 보름과 칠월칠석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번영과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소문을 듣고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고 부부사랑을 확인하려는 외부 탐방객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테마파크 내에도 부부나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백제가요 전시실. ⓒ천지일보 2021.12.28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백제가요 전시실. ⓒ천지일보 2021.12.28

◆수제천, 한국 궁중음악의 진수가 되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정읍은 기악곡 ‘수제천(壽齊天)’으로 전승된다. 수제천의 원래 이름은 정읍으로 신라 때 아악의 하나로 궁중의 중요한 연례(宴禮)와 무용에 연주하던 관악으로 ‘정읍사’를 노래하던 음악이다. 국가의 태평과 민족의 번영을 노래한 음악으로 듣는 이에게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가장 뛰어난 궁중음악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수제천은 지난 197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유네스코 아시아음악제 전통음악분야에서 최우수 곡으로 특선된 국악의 걸작으로 ‘천상의 소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다’는 심사평을 받기도 했다.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시관 입구 BTS 입체 형상 사진. ⓒ천지일보 2021.12.28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시관 입구 BTS 입체 형상 사진. ⓒ천지일보 2021.12.28

◆상고시대~BTS K-TOP ‘열풍’

우리 민족은 늘 음악과 가까이했다. 과거 상고시대는 하늘에 제를 올릴 때 음악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사할 때도 노동요를 부르며 고된 하루를 버텨냈고 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흥겨운 음악이 들려왔다. 이후 궁중에서 체계적으로 갖춰진 음악을 연주했다. 이웃 나라들과의 교류에도 빠지지 않고 가깝게는 중국이나 일본과 음악적 교류를 했으며 근현대에 와서는 서양음악의 유입으로 대중음악이 한층 더 다양해졌다. 오늘날 K-TOP과 같은 한국 대중음악이 BTS까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발전하고 있다.

김정희(50대, 군산)씨는 테마파크 관람 소감을 묻자 “뭐랄까? 가족을 위해 20년 넘게 자기 몸 아끼지 않고 일해온 남편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로 앞으로 후회하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정읍=이미애 기자] 숙지황, 생강, 대추 등 총 20여가지의 엄선 된 특등품 약재로 만든 정읍의 명물 쌍화차. ⓒ천지일보 2021.12.28
[천지일보 정읍=이미애 기자] 숙지황, 생강, 대추 등 총 20여가지의 엄선 된 특등품 약재로 만든 정읍의 명물 쌍화차. ⓒ천지일보 2021.12.28

◆정읍의 명물 궁중탕약 ‘쌍화차’

정읍에 와서 먹고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만한 차가 있다. 궁중탕약에서 영향을 받아 숙지황, 생강, 대추 등 총 20여 가지의 엄선된 특등품 약재를 옹기나 뚝배기에 열두 시간 넘게 푹 달여 밤, 은행, 잣 등의 고명을 넣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바로 쌍화차다.

푸짐한 밤과 대추 때문에 쌍화차는 차(茶)지만 수저로 떠먹어야 한다. 뜨거운 쌍화차 한 잔을 다 먹고 나면 온몸에 기분 좋은 온기가 퍼진다. ‘후후’ 불어가며 씁쓸한 듯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차에 맛밤이며 대추, 은행을 건져내 씹는 맛이 제격이다.

정읍의 차(茶)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신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에 정읍의 토산품으로 차가 기록돼 전해져올 정도로 차 문화도 오래된 고장이다. 이런 특징으로 쌍화찻집은 새암로를 따라 자생적으로 형성돼 오다 장명동 주민센터 인근 지역에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도심 한복판 ‘쌍화차의 거리’가 조성됐다.

가족과 함께 관광 온 이준현(40대, 광주)씨는 “우리나라 음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 정읍의 정해마을이 한몫을 한 것 같다”며 “주차장 시설이나 놀이터가 있어 아이들 뛰어놀기에도 좋고 해설사가 있어 음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바쁜 일상 속 가장 소중한 것을 뒤로하고 달려간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가족과 부부애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 정읍에 들러 다가오는 2022년 ‘검은 호랑이해’ 화목하고 행복 넘치는 경인년 새해를 맞이해 보길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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