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9일 오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던 중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1.8.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9일 오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던 중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1.8.9

韓 현대사 가장 길었던 밤 12.12… 9개월 세계 최장 쿠데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에 사망

국방부‧육군본부 점령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강제 연행

1981년 전두환 시대 시작… 12.12 이어 5.18민주화운동 유혈

김영삼 정부, 1212사태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 규정

반란 주역 전두환 지난달 23일·노태우 10월 23일 각각 사망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길었던 밤으로 꼽히는 1979년 12월 12일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중심이 된 신군부가 군사 반란을 일으킨 날이다. 신군부의 은밀한 작전명 ‘생일집 잔치’.

반란 직전 같은 해 10월 26일 18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피살됐다.

전두환은 박 대통령 암살된 뒤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10.26사태 수사를 전담했다.

전두환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은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정 총장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서 돈을 받아 10.26사태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라는 구실로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했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군부 내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갖춘 전두환은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이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했다.  

전두환은 12월 초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12일 저녁 보안사 수사관들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해 제압한 후 정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당시 신군부 측은 정 총장의 연행에 반발할지도 모르는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을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했다. 이들이 뒤늦게 정 총장의 강제 연행을 알아챘을 무렵에 대응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미리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 같은 일련의 12.12 사태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뤄졌고 전두환은 사후 재가를 받고자 최 대통령을 압박, 정 총장 연행 재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노재현 국방장관을 체포해 그를 통해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게 설득했다. 결국 13일 새벽 정 총장의 연행을 재가했고 이후 신군부 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때 육군 제9보병사단장으로서 예하 2개 연대를 서울에 보내 전두환을 도왔다.

12.12사태로 전두환 시대가 시작됐다. 전두환은 12.12사태를 계기로 정치 권력까지 장악했고 1980년 5.17 군사 쿠데타 사건으로 본격적인 정권 장악에 돌입했다. 신군부는 5월 17일을 기점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임시국회도 무산시켰다. 또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에 항거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신군부는 공수부대 등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그해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전 소장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12.12사태 후 권력 장악까지 9개월여가 걸린 세계 최장 쿠데타로 기록됐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세력에 의해 정당화됐으나 이후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사법적 판결을 통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반란 주역인 전두환은 지난달 23일, 노태우는 지난 10월 26일 각각 사망했다.

(왼쪽)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젊은 남녀가 금남로2가를 지나다 공수부대가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흘린 채 끌려가고 있다. (오른쪽) 1980년 5월 19일 오후 7시경 무등경기장을 출발한 200여대의 차량시위. 계엄군의 만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운전기사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5월 항쟁의 최대 전환점을 가져왔다. (제공: 광주 5.18기념재단) ⓒ천지일보 2020.5.14
(왼쪽)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젊은 남녀가 금남로2가를 지나다 공수부대가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흘린 채 끌려가고 있다. (오른쪽) 1980년 5월 19일 오후 7시경 무등경기장을 출발한 200여대의 차량시위. 계엄군의 만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운전기사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5월 항쟁의 최대 전환점을 가져왔다. (제공: 광주 5.18기념재단) ⓒ천지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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