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2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이었던 장가오리 당시 부총리가 중국 베이징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캡처)
2016년 6월 12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이었던 장가오리 당시 부총리가 중국 베이징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캡처)

정부 수습에도 일파만파

가해자 지목 장가오리 침묵

IOC 위원장과 친분 의혹

호주도 올림픽 보이콧 검토

해외 스포츠계도 선택 기로

[천지일보=이솜 기자] 중국 공산당 정치 엘리트의 성폭행 고발 사건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제기된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기류에 더해져 세계적인 분노가 커지자 향후 중국 스포츠 사업에 해외 선수들과 업체들이 적극 나설 수 있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중국 테니스 스타인 펑솨이가 쏘아 올린 #미투 사건의 핵심 논란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장가오리(75) 전 중국 부총리에 있다.

펑솨이에 세계의 이목이 모인 지난 19일 동안 장 전 부총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중국 정부 역시 펑솨이에 대한 언급은 몇 차례 했지만 장 전 부총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나서 펑솨이와 영상 통화를 했고 그의 안전을 확인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올림픽 보이콧’도 주목받고 있다.

앞서 펑솨이는 지난 2일 밤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장 전 부총리가 2018년 은퇴한 뒤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을 포함해 위력에 의해 오랜 기간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게시물은 약 20분 만에 사라졌고 이후로 중국 유명 SNS 플랫폼에서 펑솨이와 이번 사건이 관련된 검색어는 모두 차단됐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 실종설이 제기된 펑솨이는 19일 만인 지난 21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장 전 부회장에 대한 조사나 이와 관련된 사건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장가오리, 올림픽 설계자… IOC와 친분

중국 측에서 여러 차례 펑솨이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것을 주장했으나 동료 선수들과 국제기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9일간 묘연했던 펑솨이의 행방을 설명하지 않고 있으며 펑솨이의 안전을 증명한다며 내놓은 증거들이 객관적이지 않고, 장 전 부총리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4일(현지시간)에는 베이징올림픽과 장 전 부회장의 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전날 영국 테니스 선수 리암 브로디가 바흐 위원장과 장 전 부총리가 악수하는 사진을 공개하는 데 이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IOC 문서 등을 인용해 장 전 부총리가 베이징올림픽의 운영 총책임 역할을 맡았다고 보도했다.

IOC 문서에 따르면 장 전 부총리는 ‘2022년 올림픽 유치 계획을 지도·지지·감독하기 위한 운영단’을 이끌었다. 운영단에는 모든 관련 부처의 수장들이 포함됐으며 그는 바흐 IOC 위원장을 포함한 올림픽 최고위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중국 정부도 장 전 부총리가 2018년 후임에게 자리를 넘기기 전 경기장 건설부터 교통수단까지 모든 것을 지시했다고 밝히며 그를 운영 그룹 수장으로 지목한 바 있다.

장 전 부회장과 IOC의 긴밀한 관계가 밝혀지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바흐 위원장이 보장한 펑솨이의 신변안전이 사실인지에 대한 의문와 성폭행 가해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거부감이다.

브로디는 바흐 위원장과 장 전 부총리 사진을 올리며 “이제 IOC가 왜 이런 입장을 취했는지 알게 됐다”고 지적했으며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와 국제앰네스티는 IOC와 바흐가 오는 2월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한 ‘눈가림’에 가담했다고 비난했다.

베이징올림픽에 국제적 비난이 커지며 보이콧을 검토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이날 미국과 영국에 이어 호주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 중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올림픽에 선수들은 참가하나 관리나 정치인으로 구성된 정부 차원의 대표단은 참석하지 않음을 뜻한다.

프로 테니스 스타 펭 슈아이(35, 오른쪽)가 중국의 경제사령탑 장가오리(75) 상무 전 부총리를 성폭행 혐의로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처음으로 공산당 권력의 정점을 상대로 #미투 운동을 벌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처: 뉴시스)
프로 테니스 스타 펭 슈아이(35, 오른쪽)가 중국의 경제사령탑 장가오리(75) 상무 전 부총리를 성폭행 혐의로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처음으로 공산당 권력의 정점을 상대로 #미투 운동을 벌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서방이냐 중국이냐… 스포츠계 고민

이번 공산당 미투 사건은 올림픽을 넘어 해외에서의 중국 스포츠 사업 진출까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중국 경제 지형의 특수성, 서방과의 대립, 점점 더 독재적인 국가를 만드는 시진핑 국가 주석 하에서 성장하는 민족주의 정신 등이 해외 스포츠 업체와 선수들의 중국 경기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가 펑솨이의 안전을 확인하지 못할 경우 중국에서의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스포츠계의 인식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WTA는 지난 10년간 중국 시장에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선 단체 중 하나다. 중국 진출의 가장 선두에 있던 스포츠 단체의 결정에 잠재적인 금광을 캐려던 해외 리그, 팀, 이사회, 선수들이 ‘중국 사업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자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WTA의 이번 경고는 특이한 사례다. 미국 프로농구협회(NBA)나 영국 프리미어 리그, 포뮬러원(F1), IOC 등 중국에서 수백만 달러의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스포츠 단체들은 대부분 중국 정부를 화나게 하는 행동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하는 여론은 스포츠 단체들이 무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NYT는 꼬집었다. 예를 들어 퓨 리서치 센터의 올해 보고서는 67%의 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2018년의 46%에서 증가한 것이다.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일본 겐론NPO와 지난 9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상도 ‘나쁘다’는 응답이 73.8%를 기록했다. 지난해 59.4%에 비해 14.4%P나 증가한 수치다.

중국 스포츠 인사이더의 스포츠 분석가인 마크 드레이어는 NYT에 “WTA와 중국과의 대치상황은 중국과 서방 경쟁국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우리 팀 아니면 적’의 사고방식이 확산했음을 의미한다”며 “WTA의 위협이 다가올 대결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중국이 패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중국은 큰 시장이지만 세계 나머지 국가들은 여전히 더 크며 사람들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중국보다 더 큰 시장을 선택할 것이란 설명이다.

어떤 스포츠 단체와 구성원이든 중국 정부를 수틀리게 한다면 국제적 논쟁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뼈저리게 다가오고 있다. 2019년 NBA 휴스턴 로키츠의 데릴 모레이 단장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다가 몇 년간 발전해온 관계가 눈 깜짝할 사이 파열된 바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리사 델피 네이로티는 NYT에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더 많은 기업들이 유럽과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아 대학의 스포츠 경영 교수인 베이커 3세는 “장기적으로 볼 때 주요 스포츠경기들이 당장 중국 일정을 앞당기는 데 주저할 것”이라며 “2008년 세계를 환영했던 중국은 2021년 사람들이 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