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인터뷰|혼다 토모쿠니 박사

일본서 교육자의 길 걷다가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한국행

한국서 시작한 헌혈 ‘80회째’

“화해·우정 다지는 피 되길”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한 번의 헌혈로 4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80회째이니까 벌써 수백명을 살린 게 되지 않겠어요? 제 피가 한일관계에 있어 화해와 우정을 다지게 되는 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로 34년째 한국생활을 하면서 남다른 ‘한국사랑’을 실천하는 ‘일본인’이 있다. 그는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면 한국국적에 비해 제약이 없는 일본국적으로 자유롭게 북한을 왕래하며 통일의 가교 역할도 하고 싶다는 그는 바로 ‘혼다 토모쿠니(60)’ 박사다.

‘봉사하는 기쁨, 위하여 사는 삶’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외발 자전거’처럼 한 번 멈추면 쓰러질 것을 알기에 열정과 ‘초(超) 긍정 마인드’로 힘차게 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혼다 박사를 지난 23일 기자가 만나봤다.

혼다 박사는 일본 초등학교 2급, 중학교 1급, 고등학교 2급, 특수학교 1급 교사 자격에 서울대 국어교육학 석·박사, 서강대 일본어 강사, 서일대 교수, 배화여대 겸임교수, EBS 일본어 회화 강사, 대한민국 국회 일본문화특강 강사, 대한적십자 헌혈봉사 50회 금장 수상, UN합창단 한국실행위원회 국제협력위원장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1987년 ‘한국은 기회의 땅’ 느껴

특수교육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도 교육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그가 어떻게 일본이 아닌 한국에 정착해 이같이 다양한 이력을 가지며 지금까지 살게 된 것일까. 혼다 박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시기는 지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교 교사였던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답사 차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그는 38선과 제3땅굴 등을 보며 한국이 분단국이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혼다 박사는 “그때 한국에서 ‘88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며 ‘한국이 기회의 땅이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던 찰나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충북 제천의 박달재에서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한국에서 살 것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혼다 박사는 학교 교무부장으로의 승진도 마다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국을 떠나 한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일본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난데없이 뺨을 맞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도 아내 집안에서의 반대로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아내의 집안에서 그는 ‘예비사위’가 아니라 속칭 ‘일본놈’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 온 것이기에 다시 일본으로 갈 순 없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결국 아내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사 결혼에 골인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IMF가 오히려 ‘기회’로 찾아와

그에게 한국이 실제 ‘기회의 땅’이 된 사건도 찾아왔다.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던 IMF 외환위기로 모두가 낙담하고 좌절할 그 시기가 오히려 그에겐 기회였다.

혼다 박사는 “대규모 실업 사태 속에 넥타이 부대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기 위해 학원으로 몰려들었다”며 “당시 일본어 학원 강사였던 나는 몰려드는 수강생으로 인해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쉴 틈 없이 일했다. 그때 꼬박 3년을 일해 집도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학원생 중엔 배화여대 교수도 있었는데 그 교수는 혼다 박사를 보고 학원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 그에게 대학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여 교수의 길을 걷기 위해 학위를 따러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국어교육학을 전공하게 됐다. 이후 석·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됐다.

◆“70세까지 헌혈 100회 목표”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7년 동안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혼다 박사는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서울대에서 헌혈을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80회째 헌혈을 하고 있다. 그는 70세까지 헌혈 100회를 목표하고 있다.

혼다 박사는 “내 피가 한국인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이것이 한일관계에 있어 화해와 우정을 다지게 되는 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한국에서 얻게 된 것이 많다는 혼다 박사는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 통일에 대한 염원도 품고 있다고 했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대학로센터에서 80회차 헌혈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한국인도 쉽게 얻지 못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일본인 신분으로 소유한 혼다 토모쿠니 박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대학로센터에서 80회차 헌혈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3

일본인신분의 ‘독도 명예주민’

통일에도 남다른 관심 가져

“北오가며 가교역할 하고파”

그는 일본인 신분임에도 독도에 입도하거나 선회 관람한 사람 등 일정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지급되는 독도명예주민증을 소유하고 있다. 독도에 입도해 정확한 발음으로 애국가를 불러 함께 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난달엔 ‘독도의 날’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혼다 박사는 한국인으로 귀화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한반도 통일’을 언급했다. 그는 “(국적을) 일본인으로 있어야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가교 역할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UN합창단 한국실행위원회 국제협력위원장이기도 한 혼다 박사는 “UN합창단과 함께 평양에서 공연하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며 “당장은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통일을 앞두고) 남북한이 진통을 겪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했다.

“저는 제 자신을 소개할 때 ‘반반치킨’과 ‘외발 자전거 타기’를 말합니다. 반반치킨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인 것처럼 제 인생은 일본생활이 반, 한국생활이 반입니다. 외발 자전거 타기는 멈추면 자전거가 넘어지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하듯 제 인생도 멈춤 없이 계속 달려왔습니다. 저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멈춤 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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