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억원에 팔린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 첫 5000일 (출처: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785억원에 팔린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 첫 5000일 (출처: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사치는 외향적인데 비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사람들의 삶은 사실 내향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 2년여간 사치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더 늘었다고 미국 위싱턴포스트(WP) 21일(현지시간) 주말판으로 보도했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사치를 즐길만한 기회를 잃게 됐다. 여행이 완전히 금지되거나 크게 어려워졌고 수많은 파티와 개막식, 공연 등 각종 모임과 전시도 거의 사라졌다. 이처럼 사회적 교류가 줄었는데도 사치는 줄지 않았다.

사치품 매출은 팬데믹 전 기간에 걸쳐 증가했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고 억만장자 대열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소비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늘었다.

그 결과 사치에 대한 열망이 늘어난 것이다. 전통적인 사치품에 대한 수요는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치에 대한 수요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에서 안전한 가정내 보여주기가 늘었다. 이처럼 사치는 어느 시대 못지않게 우리 문화의 중심이 됐다.

영어에서 사치를 뜻하는 'luxury'라는 단어는 중근대 시절까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거나 성적으로 방탕하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그러나 현대에선 그런 의미는 사라졌다. 다만 인간의 신체와 관련한 즐거움이라는 의미는 남아 있다. 신체적 질병인 코로나 팬데믹이 사치와 신체와의 관계를 바꾼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팬데믹으로 건강문제가 큰 관심사항이 되고 대화의 주제가 됐다. 튼튼하고 매력적인 신체를 가꾸는 일은 오래도록 돈많은 사람들의 특권이었지만 팬데믹으로 더 중요해졌다. 언제든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잘 가꾼 신체가 질병과 목숨을 지켜주는 지름길로 간주됐다.

팬데믹으로 단체로 하는 피트니스 클럽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급스러운 대안이 등장했다. 가정내 운동장비 매출이 급증했고 사치스러운 운동장비 매출도 크게 늘었다. 루이비통 아령은 3000달러(약 357만원), 입생로랑 덤벨은 2000달러(약 238만원)이다. 이들 제품은 실내장식적 효과도 적지 않다.

펠로톤(Peloton)이나 미러(Mirror)처럼 장비와 디지털 강습을 결합한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펠로톤사의 시가총액은 320억달러(약 38조원)에 달하고 미러사는 5억달러(약 5947억원)에 인수합병됐다. 피트니스클럽 수준의 장비와 유명 트레이너의 고가 온라인 강습을 결합해 큰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펠로톤의 매출은 전해에 비해 440% 늘었다.

크리스찬 디오르사가 이탈리아 고가 피트니스 장비 업체 테크노짐(Technogym)과 협업하기로 하면서 크리스찬디오르 상표의 옷을 찾던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다. 

고가의 월 사용료를 내는 1인실 피트니스 클럽도 활성화됐다. 하이드라(Hydra)라는 1인용 클럽은 현대적인 실내장식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몽롱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흰색 커튼으로 차단된 운동실 근처에선 누구도 소리를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체육관의 작은 방에 있으면서도 카리브해나 알프스 산에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버츄얼 피트니스 못지않게 요가와 같은 정신적 피트니스도 다양한 버츄얼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패션계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사치스러운 편안함"을 주는 의상이 등장했다. 신체의 건강함을 잘 부각시키고 감각적으로 뛰어나면서도 입기에 편안한 실내 의상이 그런 것들이다. 부드러운 옷감을 쓰면서도 신체의 약점을 감춰주고 탄력이 좋은 허리밴드를 숨겨 심어서 허리선이 매끈하게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불편함을 없애고 고립된 시대에 스킨십에 대한 갈망을 보완해주는 의상들이 등장했다. 제이슨 우, 애너 수이와 같은 디자이너 의상은 물론 펜디나 스텔라 맥카트니와 같은 유명 브랜드 의상들도 마찬가지며 피터 도의 오버사이즈 의상 가을 컬렉션은 물론 리스의 운동복 라인이나 구치가 노스페이스와 협업한 패딩재킷과 같은 애슬레저 의상이 그런 것들이다. 의상만이 아니라 각종 유명 브랜드 신발들도 팬데믹에 맞춰 고가의 운동화나 스니커즈, 샌들을 내놓았다.

사치가 가장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분야가 게임과 고가의 패션, 예술계 및 대체불가능토큰(NFT) 시장이다. 발렌시아가는 지난해 패션쇼를 열지 못하게 되자 모든 제품을 "내세: 다가오는 시대"라는 이름의 비디오 게임을 통해 소개했다. 게임사 포트나이트와 함께 발렌시아가가 디자인한 몰입형 온라인 세계를 만들어 게임을 통해 디자이너 의상 전체를 구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들 의상은 온라인상으로만 존재하지만 실물 화폐를 주어야 온라인상에서 입을 수 있다. 고가의 디자이너 의상을 입은 아바타를 통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메타버전으로 의상 체험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구치, 루이 비통, 버버리 등 유명 패션회사들도 패션체험 게임을 만들었다.

대퍼 댄 오브 할렘시 부사장 젤러니 데이는 "소셜 미디어와 게임 세계야말로 특히 사치 공간의 활동이 활발하다"면서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게임 커뮤니티는젊은이 문화와 젊은 소비자들에 이끌린  사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자리잡을 수 있는 대표적 공간들"이라고 강조했다.

NFT는 가장 직접적인 3차원 상품을 거래하는 예술시장을 온전히 디지털세상으로 옮겼 놓았다. 디지털상으로만 존재하는 예술품을 실제 예술품처럼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토지와 패션 등도 NFT로 거래가 되지만 예술품은 이미 수백만 달러짜리가 등장했다. 지난 3월 디지털 예술가 마이크 윈켈만이 만든 "비플(Beeple)"이라는 작품이 지난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6900만달러(약 819억원)에 낙찰됐다. 지난해 10월 이전까지 비플의 인쇄판은 100달러를 넘은 적이 없었다.

NFT는 남에게 보여주기에도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뉴욕대 경영학과 교수 스콧 캘러웨이는 "피카소 작품을 산다고 하더라도 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집에 초대한 몇 사람 뿐이었지만 분산장부로 가치가 검증된 NFT 작품은 수천명에 달하는 내 트위터 팔로워들이라면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사치가 확장된 셈"이라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확장된 사치의 개념이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전통적 사치 분야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이점도 보인다. 또 사치산업이 끼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도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 역시 사회적 및 환경적 인식과 불가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급시계와 보석, 에르메스 버킨백과 같은 고가 제품들도 팬데믹 상황에서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덕분이다.

팬데믹이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킨다면 오래도록 지속되는 가치를 가진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일종의 부적과 같은 힘을 주고 있다. 롤렉스(1905년 설립), 카르티에(1847년), 파텍(1839년)과 같은 회사들이 사치품의 대명사가 된 것도 바로 이런 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롤렉스 시계 품귀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롤렉스사는 "우리는 우리 제품의 품질을 떨어트리지 않으면서 우리 제품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고 강조함으로서 이같은 가치를 잘 표현했다.

팬데믹이 문화의 기반을 바꿔놓고 있다. 가치와 즐거움, 신체와 소통, 자유와 사물에 대한 소유, 여행장소 등에 관한 기본 생각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간의 가치가 가장 높아졌다. 팬데믹으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변화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을 크게 만든 것이다.

우리 모두 시간이 건너 뛰고 있다고 느낀다. 팬데믹 자체는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인식과 함께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엔데믹이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코로나는 우리의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다양한 종류의 버츄얼 활동이 공간활동을 대체하고 있다. 시간은 그러나 공간과 달리 대체할 수단이 없다. 이때문에 시간이 팬데믹으로 가장 소중해진 사치가 된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시간을 음미할 수 있다면 불안함이 덜어낼 수 있겠지만 이는 아마도 가장 희귀하고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특권이 될 것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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