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드노=AP/뉴시스] 8일(현지시간)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 지대 그로드노에 중동과 기타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철조망 울타리를 걷어내려 하고 있다.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 지대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폴란드 국경수비대 사이 충돌이 빚어져 최소 8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드노=AP/뉴시스] 8일(현지시간)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 지대 그로드노에 중동과 기타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철조망 울타리를 걷어내려 하고 있다.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 지대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폴란드 국경수비대 사이 충돌이 빚어져 최소 8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낙태부터 난민, 러시아의 관계까지 유럽에 당면한 모든 문제가 폴란드를 관통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5년 동안 폴란드의 민족주의 정부는 유럽연합(EU) 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문화 전쟁에 갇혀 있었다. EU 내에서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폴란드 정부는 이제 유럽 대륙의 실존적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최근의 문제는 폴란드 동부 국경을 따라 새로 만들어진 울타리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곳에서 수천명의 난민들은 벨라루스 군대에 의해 폴란드를 통한 EU 입국을 강요받고 있다. EU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조장했으며 배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보고 있다.

벨라루스 국경을 따라 전개된 폴란드의 대응은 유럽의 통제 강화와 입국 제한 움직임을 가속화시켰다. 한 때 지도자들이 베를린 장벽에 비교했던 헝가리 브뤼셀은 이제 첨단기술을 이용해 만든 장벽에 대한 예산을 책정할지 여부를 고려하고 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날 폴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폴란드는 자국 영토뿐만 아니라 EU 전체를 방어하고 있다”며 “폴란드는 매일 동맹의 동쪽 국경을 방어하는 데 드는 높은 비용을 부담한다”고 말했다. 서방 정부들은 유럽 이민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국경으로 인력을 보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폴란드를 지지했다.

폴란드는 이미 유럽 많은 논쟁의 중심에 있다.

수년 동안 EU 법원과 기관들은 우파 민족주의적 성향의 폴란드 집권당 법과 정의당(PiS)이 진보적 판사를 처벌, 강등, 숙청하고 그들을 정당에서 선호하는 판사로 대체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해왔다. 2주 전에는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폴란드가 사법부를 위축시킬 수 있는 대법원 징계위원회의 기능을 중단하지 않은 데 대해 하루 100만 유로(약 13억 6천만원)의 벌금을 낼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폴란드 사법 규정과 EU 법 권한에 대한 법적 충돌도 커지는 양상이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동성 결혼과 낙태에 대한 접근을 기본적인 인권으로 받아들이게 된 반면 폴란드 법원은 두 가지 모두를 제한했다. 폴란드 정부는 가톨릭의 신념을 옹호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폴란드의 법원 판결과 EU의 대응은 폴란드 내 문화 전쟁을 격화시켰다. 지난 주 수만명의 시위대가 30세 여성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바르샤바를 포함한 전국 곳곳을 행진했다. 임신 22주째였던 이 여성은 양수가 부족해 위험한데도 폴란드가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낙태 시술을 하지 않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에는 수만명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같은 바르샤바 지역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중 일부는 독일 국기를 불태우거나 “EU를 반대한다”고 외쳤다. 이들은 독일이 폴란드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 유럽 기관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폴란드는 자연적인 국경이 거의 없고 각종 문화의 교차점에 있기 때문에 유럽 분쟁의 도선이 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1920년 폴란드 군대는 국제 공산주의 혁명을 확산시키려는 소련군의 서쪽 진격을 중단했다. 1939년엔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럽 최초의 전장이 됐으며 40년 후 폴란드의 연대 운동은 소련의 붕괴를 촉발했다. 정치권 전반에서 폴란드인들은 이런 역사가 이 나라를 예외적으로 만들고 도덕적 권위를 부여했다고 하지만, 그 교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과 러시아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폴란드는 푸틴 대통령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온 프랑스, 독일을 포함한 동맹국들과 다투고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에 대해 러시아 정부에 대한 더 엄격한 제재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또한 러시아와의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협정에 대한 반대를 주도했으며 현재의 난민 사태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동맹국은 영토 보존, 정치적 독립 또는 안보가 위협받을 때마다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협약 제4조에 근거해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미국, 영국과 같은 나토 동맹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EU와는 여전히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미국과 독립적으로 행동해 유럽의 능력을 강화하려는 EU 공동의 국방 및 안보 계획을 옹호하고 있어 폴란드와 EU와의 새로운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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