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에

정헌영

석양빛이 아름답다
곱게 물든 너의 얼굴
예쁘기만 하다

인생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황혼빛에 젖어가는 것이다.

책장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단풍잎처럼
 

[시평]

계절의 변화라니, 참으로 대단하다. 요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제 그 물기가 다하여 시들어져버려 떨어지면서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 빛을 띨 수 있을까. 참으로 신비할 뿐이다. 요즘 거리에 나서면 곱게 물든 단풍으로 가로수며 멀리 보이는 산들, 너무나도 아름답다.

‘초록이 지쳐서 단풍이 들었다’고 서정주 시인은 노래했던가. 한 여름 푸르고 푸르러, 그 푸름이 지쳐서, 그 푸름을 버리고 단풍이 든 오늘, 이제 머지않아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그래서 낙엽으로 길바닥에서 뒹굴어야 하는 단풍, 그 푸름을 버림으로 해서 더욱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이리라.

그래서 어쩌면 나이가 들고 늙는다는 것은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고 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석양에 곱게 물드는 아름다움 같이, 그 아름다운 황혼의 빛에 물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며, 또 늙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늙는다는 것은 다만 쇠약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버림으로 인해 아름다워지는 것이리라.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인생이 100세를 살면 무엇하나. 100세를 살면서 욕심껏 자신의 것을 움켜잡고만 산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나이 듦에 내려놓고, 또 버릴 것은 버리는, 그래서 초록이 지쳐서 단풍이 되듯, 푸름을 버릴 수 있는 삶을, 그래서 아름다워짐을, 요즘 단풍의 계절에 한번쯤 생각해 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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