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꽁초. (게티이미지뱅크)
담배 꽁초. (게티이미지뱅크)

엄정숙 변호사 “경고문구 등 있다면 위법행위 판단 어려워”

건강보험공단, 지난해 12월 담배회사 상대 소송서 패소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특정 담배회사가 생산한 담배를 20년간 피다가 폐암 및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면, 해당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정답은 ‘어렵다’이다. 엄정숙 민사전문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5일 “이 같은 사유로 담배회사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가는 패소하고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담배로 인해 암이 발병할 경우 지출한 의료비용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다”며 “개인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손해배상청구란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자가 가해자에게 손해를 입었으니 이를 배상해 달라고 청구하는 소송이다.

엄 변호사는 “담배회사가 손해배상책임이 있으려면 ‘위법한 행위로 손해’를 끼쳐야 하는데, 경고 문구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위법한 행위가 된다”면서도 “반대로 경고문구 등을 표시해 ‘필요한 조치’를 했다면 불법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를 규정한 조항이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위법한 행위’로 손해가 가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소비자기본법 제19조 1항은 사업자의 책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사업자는 물품 등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조치’란 담배회사가 담뱃갑 등에 표시한 경고문구 등을 뜻한다.

즉 담배회사가 경고문구만 적절하게 삽입했다면 개인이나 단체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내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법도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4.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법도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4.14

실제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다가 불법행위·소비자기본법위반이 인정되지 않은 판례가 있다.

A회사가 생산·판매한 담배를 20년간 피운 B씨는 폐암 및 후두암의 진단을 받았다. B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를 지급받아 의료비를 충당했다. 이후 공단은 A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담배회사는 불법행위가 없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은 “폐암 등이 발생한 손해와 담배생산행위(불법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A회사의 담배생산·판매행위는 민법 750조 불법행위책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1976년부터 담뱃갑 등에 표시한 경고 문구의 내용에 비춰 담배위해성과 중독성에 관해 설명, 경고, 홍보 등 ‘필요한 조치’를 다했다”고 판결했다.

즉 담배회사는 소비자기본법에서 정의하는 ‘필요한 조치’를 다 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후에도 공단은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500억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법원은 흡연은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폐 질환과의 직접적 인과성을 인증하기 어렵다며 담해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엄 변호사는 “회사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령에 따른 필요조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담배회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법안이 준비 중이다.

김용익 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풀 법률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같은 달 6일 ‘담배책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흡연자가 담배로 인해 병이 걸렸거나 악화됐다는 의학적 상관관계가 입증되면 제조사에 책임을 묻는 법안이다.

특히 경고 문구가 있더라도 위험을 가볍게 여기는 홍보 문구를 쓰거나, 유해성 저감 조치에 소홀해도 제조사의 결함으로 본다는 취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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