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10월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을 지닌 소쇄원 광풍각 앞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10월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을 지닌 소쇄원 광풍각 앞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

‘조선중기’ 호남 사림문화 이끌어
정치·학문·사상 등 논하던 구심점
소쇄원 경관 한 폭 동양화 연상

조선시대 선비정신 오롯 묻어나
제월당·광풍각 마루 앉아 ‘힐링’
양산보, 초야에 묻혀 학문 정진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소쇄원에 들어서면 사람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죽림(竹林)의 선들바람이 향기롭게 맞이한다. 대숲의 향기를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곳곳의 경치가 화가의 붓으로 그려놓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대숲 길을 따라가면 무릉도원을 상상하게 하는 소쇄원 본 입구가 나온다. 돌로 쌓은 담벼락에 ‘애양단·오곡문·소쇄처사 양공지려’라고 써진 글귀가 소쇄원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사시사철 찾아오는 손님의 지친 심신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제월당과 광풍각에서 바라보는 소쇄원 전경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낸다.

본지 기자가 지난달 31일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는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한국의 대표적 명원(名園)인 소쇄원 탐방에 나섰다.

“신선한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 광주에서 달려왔다”는 김수영씨는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좋은 에너지를 받고 싶을 때 가끔 오는 곳인데 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면서 일요일인 이날 가족 단위 관람객과 나란히 손잡은 연인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견주들도 눈에 띄었다.

멀리 경남에서 온 박진관씨는 “마음의 묵은 때를 벗기기엔 소쇄원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며 소쇄원 절경을 시로 쓴 김인후의 소쇄원 48영을 언급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널따란 대밭 푸른 왕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셀카모드에 빠진 관람객의 미소가 눈에 선하다. 특히 정치적 야욕과 출세의 뜻을 버리고 스스로 초야(草野)에 묻혀 학문에 정진했던 원림의 주인인 양산보를 비롯한 소쇄처사가 대장동에 지혜의 한 수를 던진 듯하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대나무 밭이 우거진 소쇄원 입구 가을 풍경을 감상하며  걷고 있는 관람객 모습.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대나무 밭이 우거진 소쇄원 입구 가을 풍경을 감상하며 걷고 있는 관람객 모습. ⓒ천지일보 2021.11.2

◆맑고 깨끗한 민간 별서정원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했다.

문헌에 따르면 소쇄원의 조성연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양산보가 낙향한 1519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송순, 김인후, 등의 도움을 받고 그의 아들인 자징(子澂)과 손자인 천운 등 3대에 걸쳐 완성되면서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끌었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학문·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소쇄원은 크게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한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당시 양산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양산보는 송(宋)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한 것에 유래해 대표적 건물을 각각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으로 이름했다.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며, 비 갠 뒤 해가 뜨면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했다.

초가지붕의 대봉대(待鳳臺) 위의 초정은 양산보가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으며, 애양단(愛陽壇) 담장에는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사십팔영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매대(梅臺)에는 2단의 단을 두고 매화를 심었으며, 문패격인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담양군 소쇄원을 찾은 관람객이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지닌 제월당(霽月堂) 마루에 앉아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담양군 소쇄원을 찾은 관람객이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지닌 제월당(霽月堂) 마루에 앉아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2

◆문화유산의 보배 ‘소쇄원’

소쇄원에는 영조 31년 1755년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이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 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전체적인 면적은 1400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조성된 건축물, 조경물은 상징적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내며 그 안에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다.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있고 북쪽의 산사면에서 주요한 조경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우물, 탑암과 두 개의 연못이 있으며 계곡을 이용한 석축과 담장이 조화로운 곳이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깊어가는 가을 10월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한국의 대표적 명원(名園)인 소쇄원의 가을 풍경.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깊어가는 가을 10월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한국의 대표적 명원(名園)인 소쇄원 가을 풍경을 즐기며 걷고 있는 관람객 모습.  ⓒ천지일보 2021.11.2

이러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 중종때의 선비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그 정확한 조영 시기는 1520년대 후반과 153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 중수하고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는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할 수 있다.

소쇄원에 대한 최초의 기사는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 보이며, 이후 송강 정철은 자신이 태어난 해(1536년)에 소쇄원이 조영됐다라는 시를 남겼다. 이후 하서 김인후는 1548년 소쇄원사십팔영을 지어 애양단에 게첨했다.

제월당 우측에서 바라보면 내부에는 소쇄원사십팔영과 소쇄원을 주제로 한 한시가 걸려 있다.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청량한 바람이 부는 가을, 소쇄원에서 선비의 지혜도 배우고 깊어 가는 가을을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국가 명승지 담양 소쇄원 입구.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국가 명승지 담양 소쇄원 입구. ⓒ천지일보 2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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