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광평동 땅속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 발굴됐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를 받아 (재)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 등이 발견됐다. 사진은 지난 6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모습. ⓒ천지일보DB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광평동 땅속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 발굴됐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를 받아 (재)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 등이 발견됐다. 사진은 지난 6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모습. ⓒ천지일보DB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를 흔히 ‘조선의 폼페이’라고 부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종로에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붙여진 이름이다. 그럴만한 것이 위치적으로 조선시대에 경복궁 등 궁궐이 자리하고 있고, 육조거리(조선시대 6개 중앙관청이 있던 광화문 앞의 대로)가 그 앞으로 펼쳐져 있었다. 또 임금과 신하들이 자주 찾던 장소도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 그러니 옛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보물창고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와 ‘물시계’ 등이 출토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출토된 유물은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Ⅲ에서 전시된다. 

출토된 금속활자는 한자 1000여점, 한글 600여점 등 총 1600여 점이다. 16세기 조선 전기 유물인 일성정시의, 물시계 등이 함께 나와 금속활자의 연대가 분명해졌다. 금속활자는 ‘갑인자(甲寅字)’ ‘을해자(乙亥字)’ ‘을유자(乙酉字)’ ‘동국정운식 한자음 한글 활자’ ‘미분류 활자’로 나뉘어 전시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갑인자본 ‘근사록(近思錄, 1436년)’에서 작은 자 ‘火(화)’ ‘陰(음)’이 확인됐다. ⓒ천지일보 2021.11.2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갑인자본 ‘근사록(近思錄, 1436년)’에서 작은 자 ‘火(화)’ ‘陰(음)’이 확인됐다. ⓒ천지일보 2021.11.2

◆조선 전기 활자 특징

그렇다면 조선 전기에 사용된 이 활자들은 각각 어떤 특징을 가졌던 걸까.

‘갑인자(甲寅字)’는 1434(세종 16)년에 경연에 있던 ‘효순사실(孝順事實)’ 등 서책의 글자를 자본(字本)으로 삼고, 부족한 글자는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모사한 글자로 보충해 20여 만자를 만들었다. 그 형태는 ‘세종실록(1435년 8월 24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활자는 네 모퉁이가 평평하고 바르다(四隅平正)”라고 했다. 크기는 대자 가로 1.6㎝, 세로 1.4㎝다. 소자는 가로 0.8㎝, 세로 1.4㎝다. 갑인자 주조 참여자로는 이천(李蕆), 이순지(李純之), 장영실(蔣英實) 등 과학 기술자가 꼽힌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갑인자본 ‘근사록(近思錄, 1436년)’에서 작은 자 ‘火(화)’ ‘陰(음)’이 확인됐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을해자본 능엄경(楞嚴經), 1461년)에서 ‘留(류)’ ‘乃(내)’ ‘垢(구)’이 확인됐다. (제공:문화재청)ⓒ천지일보 2021.11.2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을해자본 능엄경(楞嚴經), 1461년)에서 ‘留(류)’ ‘乃(내)’ ‘垢(구)’이 확인됐다. (제공:문화재청)ⓒ천지일보 2021.11.2

‘을해자(乙亥字)’는 1455(세조 1)년에 세조 즉위 후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의 글씨를 자본으로 한 활자인 경오자(庚午字)를 녹여서 강희안(姜希顔, 1418~1465)의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했다. ‘성종실록(1474년 11월 22일)’에 보면, 성종이 무슨 활자를 가지고 책을 인쇄하느냐고 묻자, “갑인자와 을해자 두 가지를 사용합니다. 책을 인쇄하기로는 경오자만큼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만, 이용(李瑢,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이유로 녹여버리고 강희안(姜希顔)에게 자본(字本)을 쓰게 하여 활자를 다시 주조하였는데, 을해자가 바로 이것입니다.” 

을해자 크기 ‘대자’ 가로 2.3㎝, 세로 1.8㎝, ‘중자’ 가로 1.5㎝, 세로 1.3㎝, ‘소자’ 가로, 세로 1.0㎝로 확인된다. 을해자는 임진왜란까지 갑인자와 함께 가장 많이 사용한 글자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을해자본 능엄경(楞嚴經)(1461년)에서 ‘留(류)’ ‘乃(내)’ ‘垢(구)’이 확인됐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일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언론간담회가 열리고 있다.사진은 출토된 금속활자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한 확대경의 모습.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일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언론간담회가 열리고 있다.사진은 출토된 금속활자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한 확대경의 모습. ⓒ천지일보 2021.11.2

‘을유자(乙酉字)’는 1465(세조 11)년에 세조가 원각사(圓覺寺)를 준공하고 ‘원각경(圓覺經)’을 간행하기 위해 정난종(鄭蘭宗, 1433~1489)로 글씨를 쓰도록 하여 자본으로 삼아 활자가 제작됐다.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권7에 따르면, “세조가 을유년에 원각경을 인출하고자 정난종에게 명하여 쓰게 하였는데 글자체가 바르지 않다”고 했다. 글자 크기는 ‘대자’ 가로 2.1㎝, 세로 1.5㎝, ‘중자’ 가로 1.0㎝, 세로 1.0㎝, ‘소자’ 가로 0.6, 세로 1.0㎝다. 이 글자는 1484(성종 15)년에 갑진자(甲辰字)를 주조할 때 폐기돼 20년 정도 사용됐다.

금속활자 ‘동국정운식 한자음 한글 활자’은 동국정운(東國正韻)에 수록된 한자 표기 방식이 적용된 한글 금속활자다. 동국정운이라는 제목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448(세종 30)년 훈민정음 창제 후 한자음 표준화 목적, 중국 한자음 대응, 한국 한자음 설정 시도에서 책을 간행했다. 하지만 발음이 조선 발음과 거리가 있어 15세기에 한정해서 사용됐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일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언론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출토 당시 금속활자가 담겨있던 항아리의 모습이다. 출토 당시 항아리의 윗 부분이 파손돼 있었다. 금속활자는 오랜 기간 항아리에 담겨 있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보 2021.11.2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일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언론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출토 당시 금속활자가 담겨있던 항아리의 모습이다. 출토 당시 항아리의 윗 부분이 파손돼 있었다. 금속활자는 오랜 기간 항아리에 담겨 있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보 2021.11.2

미분류 금속활자는 1300여점이다. 전시에서는 전체가 정렬돼 전시된다. 전시된 금속활자를 관람객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전시장 여러 곳에 확대경과 사진을 담은 휴대용컴퓨터를 비치했다. 또한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알려주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의 유물도 전시된다.

문화재청과 수도문물연구원은 이번에 출토된 유물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한다. 사실 조선의 수도인 서울의 경우 발굴조사가 궁궐을 제외하면 역사가 짧은 편이다. 그러다 청계천을 시작으로 하나씩 차례로 역사를 담긴 유물들이 출토되는 있는 상황이다. 다른 역사에 비해 조선시대가 현대와 가까워 유물 발굴이 미미한 점도 있었다고 한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이번 금속활자의 발견으로 조선 역사의 부족한 조각이 채워지는 듯 하다”며 “우리 역사가 뿌리 깊은 전통을 토대로 이어져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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