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통섭예술인
우리가 최선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과 진짜 원하는 것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을 규명해내고, 이를 활용해 성공적인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언씽킹(unthinking)’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생각(thinking)은 누군가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언씽킹의 영역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한다. 즉, 사회적 교육과 규범에서 벗어나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하게 포착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 가장 좋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언씽킹’이 필요하다. 남을 따라, 과거의 자신을 따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칸트에 의하면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이 아닌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동이다. 이 행동이 목적이 된다. 즉, 주어진 목적에 걸맞은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덕분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고 마이클 샌델은 말한다. 반대로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가 목적의 주체가 아닌 도구가 되어 우리 밖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박엽이라는 자가 ‘등불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밤은 밖으로 나가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이를 풍자하여 ‘예술이 내 삶으로 들어오자 무료함이 밖으로 나가네’라는 표현을 했다.

며칠 전 예술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김창일(CI Kim) 작가의 전시를 보고 왔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Who can say what?(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은 반어적으로 누구나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CI Kim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걱정하는 것처럼 타자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볼지도 모른다. 어쨌든 기업가, 콜렉터, 화랑 주인으로서 언씽킹의 영역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예술가라고 선언하고 행동하는 그가 자랑스럽다. 조영남, 마광수 작가도 이 부류에 속한다. 훌륭한 작가의 근성에는 자신감과 열정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인품이나 성격은 능력이나 학식보다 중요하다. 김종삼 시인의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표현처럼 여태껏 어찌 살아왔는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앞으로의 삶도 긍정적이 될 것이다.

며칠 전 지인이 마광수, 박인숙, 박성남, 도문희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그림을 잘 그렸었는데 지금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늦지 않았으니 하라”고 권유했다. 안 하는 게 늦은 것이지, 하면 절대 늦는다는 단어를 쓸 이유가 없다. 단,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쉬운 게 예술이 아니다.

마광수 교수는 “‘야한 정신’이란 ‘과거보다 미래에, 도덕보다 본능에, 질서보다 자유에, 정신보다 육체에, 전체보다 개인에, 절제보다 쾌락에’ 가치를 매기는 정신을 말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철학과 정체성이 필요하다. 조각가 문신(1923~1995)은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사람이 인격으로 평가받듯이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한국처럼 미술 마피아 사회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학연, 지연, 인맥으로 배타적인 미술생태계를 유지하는 속물들로 가득한 사회다. 포브스는 “거울을 속일 수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했다. 소위 고가품을 두른다고 하여 나의 모습이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예술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다. 장영희 시인은 말한다. “오늘도 그대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아라. 실패한 사람들에겐 ‘못했지만 잘했어요’라고 말해 보아라. 힘들 때는 스스로에게 주문하여라.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라고. 어지럽고 혼탁한 사회, 이젠 자신과 다른 타인을 진정으로 격려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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