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젊은 사내의 모습은 머리가 짧은 데다가 하관이 빨아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다. 노인은 모르면 몰라도 그가 군역을 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대군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왜 시체를 뒤지고 있지? 그리고 저 페트병 속의 누런 액체는?’

담배가 타들어가는 게 아까운 듯 최대한 느리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사내를 훑어보며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노인은 결코 그 궁금증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무슨 딱한 사정이 있겠거니 속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만일 노인이 기어코 그 사정을 물었다면 젊은 사내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먹고 살기 위해서라요. 내래 지난달에 제대를 했시다. 제대와 동시에 직장을 배당받았지만, 알다시피 그건 허울뿐이었디요. 일거리가 없어 월급도 안 나오는 공장이었으니끼니. 노모까지 모시고 있는 터라 굶어죽을 수는 없고, 마침 이때 다행스럽게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 친척으로부터 주문이 있었지 뭡네까,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는 추깃물을 좀 구해달라고. 그 추깃물이 아직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쓰인다고 기래요. 특히 ‘베체트’병인가 뭔가 하는 데에 아주 특효가 있다고 합디다래. 사실 추깃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최적지 아니갔소. 그래서 내래 몇 푼이라도 벌려고 이렇게 시체 더미를 뒤지고 있습니다래.”

사실대로 이렇게 대답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젊은 사내도 노인네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야산에 버려진 시신은 거의가 염도 못한 헐벗은 사체들이었다. 썩은 살점이나 뼈다귀라면 모를까 그 외에는 이 구덩이에서 무엇 하나 건질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수상쩍게 시체를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묻지를 않았다. 보나 마나 처지가 딱한 자신처럼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미루어 생각할 따름이었다.

사실 노인은 그의 아들 일로 시신을 헤집고 있었다.

몇 달 전 그의 아들은 보위부에 잡혀갔다. 당국이 갑자기 단행한 화폐개혁에 강력한 항의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은 중국과의 보따리 장사로 외화를 꽤 모았는데 화폐개혁에 따른 시장 폐쇄 조치로 그 외화를 거의 몰수당하게 되자 화가 나 보위부 요원과 다툰 것이 불씨였다. 그 과정에서 그의 아들은 보위부 요원과 서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분이 치솟았는지 싸움 도중 장군님에 대한 불손한 언사까지 자신도 모르게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날강도처럼 이렇게 인민의 재산을 빼앗는 게 진정 장군님의 뜻이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대죄였다. 주위에서는 다들 보나 마나 잡혀간 아들은 처형을 당했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후 노인은 아들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생사확인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아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완벽하게 아들의 존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 죽었다고 보고 그 시체라도 찾아 묻어주려고 이렇게 송장 더미를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늦게 본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자신의 손으로 거두어주고 싶은 게 아비의 마음이라서.

얼굴 확인이 안 되는 시체를 뒤집어보는 건 아들의 엉덩이에 큰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들 생각을 하자 노인의 눈에는 어느새 또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슬이 맺힌 그의 눈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짙게 배어 있었다. 이제 아들의 실종으로 자식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여차하면 자신도 머잖아 이 구덩이 속에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탓이었다.

이런 공포감이 생기자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생각이었지만 지우려고 해야 지울 수 없는 염려이기도 했다. 그는 그 몸서리쳐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아들의 시신을 찾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본인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제 필터만 남은 꽁초를 노인은 멀리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말없이 젊은 사내에게서 등을 돌렸다. 왠지 어깨가 담배를 피우기 전보다 더욱 처져 보였다. 노인이 다른 구덩이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젊은 사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어르신, 부디 만수무강하시라요.”

젊은 사내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간곡했다. 진정성과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말투였다. 하지만 노인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에 만수무강이라니!

절뚝거리는 다리로 아들의 시신을 찾아 맞은편 구덩이로 향하는 노인의 머리 위로는 황사에 제 빛을 빼앗긴 태양이 영양실조가 심한 아이의 얼굴처럼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