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야당 급진당 소속 엠마 보니노(가운데) 상원의원이 로마에 있는 의회에서 존엄사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탈리아 야당 급진당 소속 엠마 보니노(가운데) 상원의원이 로마에 있는 의회에서 존엄사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국민투표 청원 서명자 100만명 돌파

치열한 찬반 논쟁 전개될 듯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인 이탈리아에서 내년 안락사 찬반 국민투표가 실시될 전망이다.

ANSA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안락사 합법화를 추진하는 이탈리아 민간단체 ‘루카 코쉬오니’는 국민투표 청원을 위한 서명 운동을 시작한 지 약 두 달 만에 서명자 수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지난 23일(현지시간) 밝혔다.

대법원에 국민투표 청원서를 제출하는데 필요한 서명자 수(50만명)의 두 배에 달한다.

지난 2013년 서명자 수가 7만 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안락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이 단체는 내달 초 서명자 명부를 대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그 적법성을 확인한 뒤 국민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서명자 규모에 비춰 이변이 없는 한 이를 승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투표 시점은 내년 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법은 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돕거나 방조하면 최장 12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 때문에 통상 안락사를 원하는 이탈리아인은 스위스로 건너간다. 한해 50여명가량이 스위스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서명운동은 ‘죽을 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에 앞장서 온 마르코 카파토가 주도했다.

그는 2017년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이탈리아 유명 음악 프로듀서 파비아노 안토니아니(DJ 파보)와 함께 스위스로 건너가 그의 안락사를 도왔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살인 방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 2019년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돕는 일이 항상 범죄는 아니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반영한 판결이다.

이처럼 사법부는 점차 안락사에 전향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 여론의 향배는 가늠하기 어렵다.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를 중심으로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국민투표 실시가 결정되면 의회에서는 물론 국민적인 찬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서는 스위스 외에 네덜란드·벨기에 등이 안락사를 합법화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스페인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탈리아 가톨릭 교계는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국민투표 추진 상황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이탈리아주교회의(CEI)는 27일 성명을 통해 안락사 국민투표가 ‘심각한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CEI는 타인의 죽음을 돕는 게 동정심의 표현이 될 수 없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나타난 연대의 정신과도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