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민족의 영웅. 광개토태왕을 바라보는 대중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시중에 나온 책이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만을 가지고 광개토태왕이 어떤 인물인지를 파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에 대한 아동 도서나, 그를 CEO로 칭송한 상당수의 책 역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 줄 수 있다.

이런 점을 지적하는 저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비치는 한 인간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광개토태왕을 신화적 인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그와 그의 시대를 제대로 아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그가 정복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고구려인의 입장, 주변국의 입장에서 그의 업적과 상황을 돌아본다.

이 책이 빛나는 점은 객관적인 사료에 당대를 꿰뚫는 인식이 가미되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엎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살펴보자.

# 왜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광개토태왕’인가?

‘태왕’이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왕 가운데 왕, 제국을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왕은 단일한 체제를 갖춘 나라의 지배자다. 이와 달리 태왕은 다양한 체제를 아우른 광범위한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뜻한다. 중국의 ‘황제’나 원의 ‘칸’ 로마의 엠페러(Emperor)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광개토대왕’이라고 부르지 ‘태왕’이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이 같은 사고의 기원은 조선 왕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에선 세종대왕, 정조대왕 등 큰 업적을 남긴 역대 임금을 높여 부를 때 대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중원고구려비에서는 신라 임금을 ‘매금왕’으로 고구려 임금은 ‘태왕’으로 표현했다. 태왕이라는 호칭을 쓰고 연호를 제정하는 것은 고구려가 천하의 주인, 곧 제국임을 만방에 과시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에 비해 조선의 임금은 고종과 순종을 제외하고는 ‘황제’라는 명칭을 감히 사용하지 않았다. 명과 청이 실질적인 황제로 군림하면서 그들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 광개토태왕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광개토태왕릉비가 발견되기 전 광개토태왕은 평범한 고구려의 왕으로 기억됐다. 그는 칭기즈칸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정복 군주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1883년 일본군이 태왕릉비를 발견하면서 그의 실체가 알려지게 된다. 이후 단재 신채호 선생 등이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높이 기리면서 대중에 소개가 됐다.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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