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중국 국경을 코앞에 둔 함경북도 회령 땅. 이곳에는 북한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는 하루라도 시체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또한 공개 처형이 곧잘 시행되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춘궁기가 닥치면 이 일대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 중에는 두만강을 넘나들며 목숨을 건 밀무역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소문에 의하면 지난번 화폐개혁이 단행되었을 때 극심한 반발로 불상사가 최고로 많았던 지방도 이 부근이라는 설이 자자했다.

#시신들은 거의가 거적때기에 말린 채 야산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동물의 주검이나 썩은 나무토막처럼.

야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그저 무성한 잡초와 가시덤불만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시체들이 유기된 흙구덩이는 모두 네 개로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구덩이 속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헐벗은 주검들이 뒤엉켜 부패되어가는 모습은 차마 못 볼 풍경이었다.
한데, 이런 연옥의 가마솥 같은 구덩이 속에서 어떤 노인이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거의 하얗게 센 노인은 줄잡아도 나이가 일흔은 되어 보였다. 거친 주름살과 피부, 닳은 손끝과 뭉툭해진 손마디로 보아 노인의 지난날은 아주 신산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면, 지지리 고생을 해서 그렇지 실제 노인의 나이는 70에 훨씬 못 미치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다리마저 약간 절뚝거리는 노인은 연신 시체들을 뒤적거리며 살펴보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의 시신을 찾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언제 버려졌는지 모를 송장을 뒤집을 때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노인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숙여 일일이 시체의 얼굴을 확인했으며, 사체가 훼손돼 얼굴 확인이 어려울 때는 뒤집어서 엉덩이를 까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엉덩이에 무슨 표식이라도 되어 있는 양.

그런데, 가만! 시체 구덩이를 더듬고 있는 사람은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옆 구덩이에서도 누군가가 사체를 살펴보고 있었다. 광대뼈가 유난히 불거진 젊은 사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기 상대의 존재를 모르는 듯 그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사내가 노인의 구덩이로 넘어가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인기척에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하긴 아무리 대낮이라고는 해도 시체 구덩이에서 갑작스레 마주쳤으니 머리카락이 곤두섰을 법도 했다.

두 사람은 마치 서로 귀신이라도 본 듯 상대를 눈이 찢어져라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둘은 그렇게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노인은 빈손이었고 젊은 쪽은 누런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들고 있었다.

먼저 정적을 깨뜨린 쪽은 노인네였다. 괜스레 헛기침을 한번 터뜨린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추레한 몰골과는 달리 그의 손에 들린 담배는 중국제로 꽤 고급이었다. 이 담배는 중국과 보따리장사를 하던 그의 아들이 남겨준 유물과도 같은 것으로 이제 마지막 남은 한 갑이었다. 불을 붙인 노인은 맛있게 연기를 한 모금 빨더니 젊은 쪽을 흘깃거렸다. 젊은 사내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잠깐 망설이더니 젊은 쪽으로 다가가 넌지시 담뱃갑을 내밀었다. 그러자 젊은 사내는 고맙고도 황송하다는 듯 머리를 조아리며 담배 한 개비를 두 손으로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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