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통섭예술인
위키백과를 보면 미술(美術)은 시각적(視覺的) 방법 또는 조형적(造形的)인 방법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예술의 한 종류라고 정의돼 있다. 미술은 미(美)를 재현 또는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재주, 또는 기예를 뜻하는 프랑스어 보자르(아름다운 기술, beaux arts)를 번역한 말로서, 영어의 파인 아트(fine arts)도 같은 뜻이다.

달항아리가 한국인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청 백 적 흑 황의 오방색으로 한국의 전형적 토속미를 강렬하게 표현한 내고(乃古) 박생광은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예술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은 그 민족 전통 위에 있다”고 했다. 오광수 씨는 정강자의 그림 <장구춤>을 보고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상을 모티브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설치미술가 강익중은 아는 것, 옆에 있는 것, 편한 것부터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내면의 소리를 잘 그리는 것이다. 백자대호(白磁大壺)라 부르는 백자 달항아리는 높이 40cm가 넘는 큰 항아리로,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를 지녔다. 백자 달항아리는 아주 고운 백토로 만들기 때문에 아래를 만들고 위를 만드는 어려운 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서로 붙여서 가마에 굽는다. 두 개의 그릇이 합쳐져야 비로소 온전한 그릇이 되는 달항아리를 만들려면 인내와 끈기, 우직함이 필연적이다. 아마 그래서 많은 한국의 작가들이 달항아리를 통해 한국인의 내면의 소리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백남준은 한때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는데 그 사기가 사기(詐欺)가 아니라 사기(史記)다. 그 말을 하실 때 사마천의 ‘사기’에 푹 빠져 있었다. 선생은 늘 이중적 해독이 가능한 표현을 즐기셨다”고 한 강익중은 문화가 잠자는 나를 깨우는 것임을 강조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곧 예술이란 얘기다. 조선백자를 사랑한 김환기는 “나로서는 미에 대해 눈이 뜬 것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며 “내 예술은 항아리 예술이다. 나는 동양 사람이며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다.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렬한 노래가 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노래다”고 했다. 이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A Birthday’에서 ‘사랑이 내게 온 날(My love is come to me!)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고영훈 김덕용 박부원 정광호 구본창 김중식 유수종 박재동 최영욱 등 달항아리로 다시 태어난 작가들이 많다.

“내 음악은 음료로 따지면 청량음료가 아니라 그냥 생수다.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넉넉한 달항아리를 처음 본 순간 딱 내 음악 같았던 건 그 때문이다. 60년 가꿔온 음악 세계가 텅 빈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황병기(75) 씨는 얼마 전 가야금 인생 60주년, 창작 인생 49주년을 기념하는 가야금 콘서트 <달항아리(Moon Jar)>를 열었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달항아리와 자연을 담은 영상이 흐르며 <숲> <영목> <고향의 달> <미궁> <산운> <하마단> 등 그의 대표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예술가들의 표현은 각각 다르지만 달항아리의 온화한 순백의 단순미, 자연스러운 곡선미, 소박한 정서에 대한 감탄과 칭찬은 같다. 백자항아리의 안정감을 표현한 도천 도상봉도 항아리를 친우라고 했다.

“도자기를 구울 때 생긴 균열이 인간의 삶처럼 느껴졌다. 삶의 과정처럼 선들이 이어지고 끊어지고 저 밑에서 다시 만나는 게 인간의 인연이 아닌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고자 선을 실재보다 더 그려 넣는다”고 달항아리로 화단에 급부상한 화가 최영욱은 말했다. 맞다. 달항아리는 한국인의 소박하고 진한 삶이며 우리 내면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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