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다른 군바리들은 여자 앞에서 모두 용감하던데 아저씨는 참 겁쟁이네.”
이러면서 여자는 어느새 나의 야전잠바 단추를 풀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사실 전방에서 근무하느라 물 구경을 못해서…”
여자의 하얀 손 위로 때가 낀 내 손이 겹쳐졌다. 몹시 대비가 되는 그녀와 나의 손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본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희고 예쁜 손이었다. 손만 놓고 판단한다면 그녀는 공주 같았고 나는 머슴 중에서도 상머슴에 속할 판이었다.

더께가 앉은 나의 손을 살피며 여자가 말했다.
“전방에서 정말 고생 무지하게 하나보다. 하지만 아저씨 같은 군인이 있기에 우리가 후방에서 편히 잠들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몸에 때가 좀 끼었다고 해서 나라를 지키는 용사들을 싫어하면 그건 도리가 아니지.”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자기를 안으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위로에 차츰 용기와 욕망이 되살아났다.
“요즘 빽 없고 돈 없으면 다 전방 간다며. 데모하다 걸린 대학생들도 그렇고.”

그녀의 말에 힘입어 나의 몸은 어느새 달아오르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나이란 젊음의 상징 같은 시기가 아니던가. 욕망이 한량없던 때이기도 하고. 전방 군인과 창녀의 관계란 어쩌면 ‘아삼륙’으로 잘 맞는 조합인지도 몰랐다.

“첫 휴가라니까 군대생활 아직 창창하게 남았겠네. 하지만 언젠가 제대할 날이 오겠지 뭐. 군대가 아무리 엿 같더라도 그날을 위해 잘 참고 견디라고. 나도 그럴 거야. 꿈이 있으니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이 짓을 하고 있지만, 장사 밑천이 생기면 새 출발을 할 거야. 배운 것 없고 얼굴도 못난 여자가 ‘손을 혹사시키지 않고’ 돈 벌 일이란 이 짓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목욕이 끝나자 여자는 아까와는 반대로 내 옷을 입혀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세웠다. 창녀의 말이라고 흘려듣기에는 그녀의 어조가 너무 진지했던 것이다.

여자가 다시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한 마디 더 해도 돼?”

나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얘기 들어 봤어? 사람은 손이 고와야 고생을 안 하고 귀인이 된다는 말. 그러니, 물론 힘들고 괴롭겠지만, 얼음물에라도 손은 꼭 열심히 씻어. 손에 때가 끼는 건 자신의 미래에 먹구름이 덮인다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 그걸 제거한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나는 여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새삼 그녀를 주시하게 되었다. 창녀의 입에서 나온 멘트가 이처럼 철학적이라니! 손에 때가 끼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앞날에 검은 구름이 덮이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순 뭔가 날카로운 것이 머리를 꼭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런 충격도 있어 나는 여자의 예쁜 손을 잡으며 이렇게 물었다.

“우리,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나의 갑작스럽고 충동적인 행동에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야 자기가 여기에 또 들르면 볼 수 있겠지. 적어도 휴가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그 이후에는 보장할 수가 없어.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자기가 빨리 제대를 하고 싶듯 나도 이 짓을 오래 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하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자의 방을 빠져나왔다. 문을 나서기 전 나는 그녀를 다시금 쳐다보았다. 그녀의 하얀 손과 목의 까만 점이 새삼 타깃처럼 내 머리 속에 깊이 들어와 박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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