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 홍수 속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 에르프르슈타트. 현지 당국은 폭우로 집이 침수돼 무너지면서 여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7일 기준 서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 등에서 170여명이 숨졌다. (출처: 뉴시스)
지난 16일(현지시간) 홍수 속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 에르프르슈타트. 현지 당국은 폭우로 집이 침수돼 무너지면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7일 기준 서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 등에서 170여명이 숨졌다. (출처: 뉴시스)

서유럽 홍수로 170명 이상 사망

북미 폭염·산불에 수백명 숨져

선진국도 기후변화 준비 안 돼

11월 유엔기후회담 결과 주목

[천지일보=이솜 기자] 홍수가 유럽을 휩쓸고, 산불과 폭염이 미국과 캐나다를 태웠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기후변화의 결과에 대비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석탄, 석유, 가스를 태워 세계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활동을 1세기 이상 지속하면서 풍요로움을 축적한 국가들이 기상재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독일과 벨기에 등 유럽의 일부 부유한 국가들은 이번 주말 물에 잠긴 도시 속에서 주차된 차들이 떠내려가고 진흙탕이 된 가재도구를 말리며 어수선한 상태로 있었다. 독일 기상청은 이번 재난을 두고 ‘1천년만의 폭우’라고 평가했다.

불과 며칠 전에는 서늘하고 안개 낀 날씨로 유명한 미국 북서부에서 수백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캐나다에서는 산불이 마을 몇 개를 삼켜버렸다. 러시아 모스크바는 기록적인 더위로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서부의 12개주에 걸쳐 산불이 번지면서 이번 주말 록키산맥은 새로운 차원의 폭염을 맞았다.

유럽과 북미 전역에 걸친 극단적인 기상재해는 지구촌에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늦추거나 이를 감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름 대응체계를 가지고 있던 선진국들이 속수무책으로 기후재난에 참패하면서 다른 나라들이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그 결과는 더 참혹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날 기준 유럽에서 발생한 홍수로 적어도 170명이 사망했으며 이들 중 대다수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국인 독일에서 발생했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전역에서 수백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망자가 더 늘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연방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홍수로 인해 1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 남서부에서는 최근 몇 년간 더위 사망자가 급증했다.

17일 독일 에르프트슈타트의 한 도로에서 구조원들이 침수된 차 안에서 희생자를 확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7일 독일 에르프트슈타트의 한 도로에서 구조원들이 침수된 차 안에서 희생자를 확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개도국 경고·과학 무시한 결과”

지구온난화로 확대된 재난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많은 개발도상국들에 죽음과 손실의 흔적을 남겼다. 방글라데시의 농작물들을 쓸어버리고 온두라스 마을은 무너졌으며 작은 섬 국가들은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부국들은 이 경고를 무시해왔다. 2013년 기후 회담을 앞두고 필리핀에서는 태풍 하이옌이 7300여명의 희생자를 내며 피해를 입자 회담에서는 기후재난 손실과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 지원이 요구됐는데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부유국들은 이를 거부한 바 있다.

세계자원연구소 인도지부 울카 켈카는 NYT에 “개도국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들은 큰 죽음과 파괴를 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선진국들이 100년 이상 배출한 온실가스가 아닌 우리의 책임으로 여겨진다”며 “현재 부유한 나라들을 강타하고 있는 재앙들은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세계의 도움을 구하려는 개도국들의 ‘거짓 경고’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여름의 재난은 수십년간 과학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기후 모델들은 온도 상승의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 경고해왔다. 특히 2018년에는 지구 평균 기온을 1.5도 이상 오르는 것을 막지 못하면 해안 도시의 범람부터 세계 각지의 흉작에 이르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과학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 배출량은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량은 계속 증가했고 1880년 이후로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이상 증가하면서 1.5도 이하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평년 기온이 오르면서 전반적으로 이상기후 발생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 최근 몇 년 동안 과학의 발전은 기후변화가 특정 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오토 박사와 국제 연구팀은 지난 6월 말 미 북서부의 폭염이 지구온난화가 없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메시지는 정책 입안자들과 대중들, 특히 지금껏 타격을 입지 않은 선진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자원이 있는 나라에서도 기후재난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게 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도일의 인근 주택에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소방관이 진압을 하고 있다. 폭염 속 강풍에 밀려 산불이 도일의 주택 여러채를 태웠다. (출처: 뉴시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도일의 인근 주택에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소방관이 진압을 하고 있다. 폭염 속 강풍에 밀려 산불이 도일의 주택 여러채를 태웠다. (출처: 뉴시스)

◆탄소 배출 감량 실현될까

이제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들와 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이 기후변화의 최악의 영향을 막자는 취지로 타결이 된 이후에도 세계의 탄소 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다. 중국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국이다. 미국과 유럽의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감소해 왔지만 지구 기온 상승을 제한하는 데 필요한 속도로는 아니다.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놓고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는 지난주 2035년까지 휘발유와 디젤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고 대부분 산업에 그들이 생산한 배기가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며 기후정책이 덜 엄격한 나라들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 로드맵을 소개했지만 기업과 해외 국가들의 반대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11월 열리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관련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지만, 이 역시 제대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해수면 상승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한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기후 비상사태에서는 나와 같은 작은 섬나라에 살든, 서유럽의 선진국에 살든 누구도 안전하지 않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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