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와 인터뷰
참사 당시 민간 신분에도 앞장서서 구조 활동 협력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그날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눈앞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던 목소리는 아직도 잊지 못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29일 26주기를 맞았다. 하지만 올해 광주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져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아직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이에 천지일보는 당시 민간자원 구조단을 이끌며 구조활동을 벌였던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대표에게서 그때의 일과 앞으로의 과제를 물었다.
고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인추협이 오후 5시경 삼풍백화점에서 회의를 할 예정이었는데, 제가 작은 교통사고가 나서 회의가 무산됐다”며 “근데 이후 삼풍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인추협의 이사장은 순천향대 이사장을 지낸 바 있는 김부성 카톨릭의대 교수였고, 고 대표의 배우자는 성모병원의 수간호사였다. 고 대표와 인추협 회원들은 그날 저녁 성모병원에 긴급상황실을 설치했다. 고 대표는 “우리가 정부 관련자들인 줄 알고 유족들이 똑바로 안 한 다고 난리였다”며 “그땐 (구조)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실제 당시 재난 상황을 총 지휘할 ‘컨트롤 타워’가 부재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고 대표는 자원한 봉사자들과 함께 민간자원구조단을 구성해 구조에 나섰다. 구조할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으나, 소방당국은 구조 활동을 벌이다가도 추가 붕괴 위험 때문에 수도 없이 철수하는 일을 반복했다. 고 대표는 “눈으로 보고도 못 구해주고 있던 것은 아직도 트라우마”라고 전했다.
고 대표는 민간 구조자로는 처음으로 무너진 현장의 지하로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오후 5시 57분 사고가 발생한 지 2시간이 지난 7시 19분경이라는 게 고 대표의 설명이다.
당시 현장은 매몰된 생존자에게 위협이 가해질 것을 염려해 중장비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 대표와 자원봉사자들은 수작업으로 구조작업을 도왔다. 고 대표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장비를 들고와서 절단기로 철근을 끊는 등 구조에 참여했다.
고 대표는 나흘 밤낮을 구조 활동에 매달렸다. 이후 자원봉사자 30여명과 지하 3층을 수색하기도 했다. 고 대표는 매몰됐던 교사 1명을 구조하는 등 여러 사람을 살리는데 앞장섰다.
삼풍참사의 인명피해는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다. 매몰됐다 구조된 수는 따로 집계가 이뤄졌는데, 소방당국과 군당국, 민간구조단 등이 구조한 매몰자는 모두 40명이다.
참사 이후에도 고 대표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강조하며 여러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 광주 철거건물 붕괴와 쿠팡물류센터 화재 등 안전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고 대표는 “청와대에 안전수석을 세우고, 재난 관계자 실명제를 통해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재난과 관련한 회사는 회사가 망할 정도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고 대표는 참사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유족들과 함께)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을 현장에 짓자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령탑은 현장이 아닌 양재 시민의 숲 한쪽에 마련됐다. 대신 참사 현장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 상태다.
고 대표는 “자본의 논리로 (현장엔) 아파트를 짓고, 위령탑은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최근 벌어진 광주 철거건물 붕괴 관련해 현장에 추모탑이나 안전체험관 건립도 주장했다.
고 대표는 “지금도 학교 현장에선 추모 열기가 이어진다”며 이 열기를 끌고 가서 안전을 위한 한 획을 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