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 미 플로리다 붕괴 아파트 실종자 사연 조명
“실종자 3분의 1이 외국인… 10여개국서 가족 방문”
[천지일보=이솜 기자] 24일(현지시간) 새벽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브루노 트렙토브는 서둘러 8층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복도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린 두 딸이 있던 802호의 가족과 젊은 부부가 살던 804호, 아들의 야구팀을 지도한 할아버지가 있던 804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20년간 이 아파트에서 살아온 트렙토브는 “나는 그들을 모두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25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처참히 붕괴된 미국 플로리다주의 12층짜리 챔플레인 타워 사우스 아파트는 은퇴자, 가족, 첫 해외여행을 떠난 여성, 이민자들이 뒤섞여 거주하고 있는 일종의 문화 공동체였다.
아파트 거주 주민들은 수영장과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영어, 스페인어, 히브리어, 포르투칼어로 대화했으며 이는 마이애미의 세계적 영역을 반영했다.
수십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 살며 일광욕을 즐기는 뉴욕 출신의 은퇴자들과 기술이나 부동산에 종사하는 새 주민들, 정통 유태인, 남미 가족, 아르헨티나와 칠레 관광객, 파라과이 시골에서 첫 해외여행을 떠난 23세의 유모들이 12층을 채웠다.
그러나 24일 새벽 아파트 절반이 무너진 뒤 이들을 포함한 159명이 실종됐다. 25일 공식 사망자 수가 4명으로 늘었고 구조대는 잔해를 샅샅이 뒤지면서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실종자들 중에는 아이들도 최소 7명이 포함돼 있다.
당국은 첫 실종자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이는 스테이시 팡으로 그는 구조대원들에게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다 잔해 속에서 구출됐다.
쾌활하고 패션을 사랑하는 언니 카손드라 빌도 스트레튼(40)을 애타게 기다리는 스테파니 퐁테는 “언니가 그 안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희망을 잃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폰테는 그의 여동생이 이 아파트에서 약 6년 동안 살았다고 전했다. 퐁테는 붕괴 직전인 24일 오전 1시 반쯤 여동생이 남편과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건물이 흔들린 후 통화는 끊어졌다.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실종 신고자의 3분의 1이 외국인이고 현재 10여개국 이상에서 가족들이 사고 현장 방문을 목적으로 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실종자들 중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지만 백신 수급이 늦고 상황이 열악한 중남미에서 소위 ‘백신 원정 접종’에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콜롬비아 출신의 변호사인 루이스 바스(51)와 그의 가족은 플로리다로의 여행이 여러 가지 목적에 부합했다고 한다. 일부 가족들이 플로리다에 있는데다, 콜롬비아의 백신 공급이 너무 늦어 언제든 무료 접종이 가능한 미국에서 백신을 맞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바스는 아내와 딸과 함께 지난달 말 플로리다에 도착해 백신을 접종하고 친구의 아파트인 이곳에서 잠시 머물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이들 가족은 마이애미에 하루 일찍 도착했고, 참사를 당했다. 그의 형제인 세르지오 바스는 루이스와 그의 가족에게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파라과이 대통령 부인의 자매 가족도 백신 접종을 위해 이 아파트 10층에 머물렀다가 건물 붕괴 후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고 파라과이 당국은 밝혔다.

25일 하루 종일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서프사이드의 주민센터에 모여 소식을 나누고 눈물을 흘리고 뉴스에 나오는 정보를 확인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의 물리적, 인명 피해 규모를 전쟁과 폭격, 9.11 테러 등에 비교했다.
모리스 와슈만(50)은 212호에 살았던 그의 가장 친한 친구 해리 로젠버그(57)를 ‘금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로젠버그의 딸과 사위는 브루클린에서 그를 방문하기 위해 왔으며, 건물이 무너졌을 때 현장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와슈만은 전했다.
레이첼 슈피겔은 어머니 주디 슈피겔이 살던 6층을 주시하며 밤새 사고 현장을 지켰다. 그는 “나는 어머니가 어디에 계셨는지 알고 있다”며 연기와 먼지 구름 속에 서서 말했다. 사고 당시 집에 없었던 레이첼 부부는 2017년부터 이 아파트에 거주했는데, 딸과 손녀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주디 역시 플로리다로 이사를 왔다.
레이디 바네사 루나 빌랄바(23)는 고향 파라과이 시골에서 파라과이 영부인 친척들의 보모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사촌에 따르면 빌랄바가 해외에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1세의 힐다 노리에가는 이 아파트의 오랜 주민 중 한 명으로, 6층에서 20년 이상 살았다. 노리에가는 최근 아파트를 팔고 아들 부부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붕괴 며칠 전 노리에가는 아버지의 날을 기념해 가족들과 외출했고, 아들 부부가 노리에가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며느리 샐리 노리에가는 “내 생각은 어머니가 그렇게 큰 붕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무엇이든 가능케 하는 신을 믿는다”며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하면 바보 같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