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빙수(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동서양 기원전부터 등장한 빙수

왕의 하사품에서 배앓이 원인으로

팥·떡·생과일 등 다양한 토핑 인기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하얗고 소복한 얼음과 그 위에 올린 달큰한 팥, 화려한 과일과 다양한 토핑들. 바로 무더운 여름이 되면 자연스레 찾아지는 빙수(氷水)다. 그렇다면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이 빙수는 언제부터 먹게 된 것일까.

◆ 귀한 재료였던 얼음

빙수는 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만들어 먹었다. 기원전 3000년경 중국에서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섞어 먹었다 하고, 유럽에서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할 때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외에도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宋史)’에는 여름철 복날이 되면 황제가 대신들에게 특별히 ‘밀사빙’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밀사빙은 꿀 밀(蜜), 모래 사(沙), 얼음 빙(氷)을 쓴 단어로 여기서 모래는 팥소를 뜻한다. 즉 꿀로 버무린 팥을 얼음과 함께 먹는 음식이었다. 오늘날 팥빙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슷한 내용은 일본의 고전 수필 ‘마쿠라노소시’에도 나온다. 이 책은 11세기 일본 궁궐의 궁녀가 궁중생활에 대해 기록한 수필로 여기서는 얼음을 칼로 갈아 낸 후 쉽게 녹지 않도록 차가운 금속그릇에 담아 칡즙을 뿌려서 먹었다는 내용이 있다. 오늘날 얼음을 곱게 갈아 만드는 빙수와 비슷해 보인다.

오늘날은 얼음을 만드는 기술로 무더운 여름에 얼음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얼음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기에 얼음을 이용한 음식인 ‘빙수’는 상류층만 향유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왕실이나 고급 관료들만 얼음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얼음을 이용한 빙수에 대한 기록이 중국과 일본의 고서에서는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는 “여름이면 얼음을 깔아 놓은 쟁반에 신선한 과일을 올려 더위와 갈증을 달랬다”는 기록이 있어 얼음을 직접 먹기보다는 음식을 시원하게 먹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100년 전, 대중화 된 빙수

우리나라에서 빙수를 판매하는 가게는 약 100년 전에 등장했다. 1913년 경성에 제빙업체인 경성천연빙회사와 조선천연빙회사가 설립됐고 이때부터 식당 등에서 여름에 ‘빙수’를 내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빙수는 대중화가 됐고 1921년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여름에 개업한 빙수점이 417곳인데 일본인이 하는 가게가 187곳, 조선인 가게가 230곳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당시 빙수가 대중화되면서 빙수를 먹고 배탈이 나는 일이 잦았다. 알고 보니 식용 얼음 대신 치료용이나 생선 보관용 얼음으로 빙수를 만드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1921년 얼음관리에 관한 법률을 공포할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하사해야만 먹을 수 있었던 얼음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질병의 원인으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신문에는 ‘빙수를 어떻게 먹어야 탈안나나’와 같은 빙수에 대한 경계가 높은 기사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그만큼 1920년대 빙수는 서민들의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날 제정으로 잘 알려진 소파 방정환 선생 역시 빙수 애호가였는데 1929년 8월호 ‘별건곤’에 ‘빙수’라는 글을 실을 정도였다. 그는 글에서 “얼음의 얼음 맛은 아이스크림보다도 밀크셰이크보다도 써억써억 갈아주는 ‘빙수’에 있는 것이다”라며 “얼음 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새빨간 딸기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라고 적을 정도로 빙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의 부인 손용화 여사가 1981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방정환 선생은) 생전에 빙수를 좋아해 하루 7~8그릇씩 집에서 먹곤 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글처럼 과거에도 빙수 위에 다양한 토핑을 올려먹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은 정말 다양한 재료를 얼음 위에 올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얼음 위에 팥, 견과류, 떡 등을 올렸다면 이제는 생과일부터 다양한 과자를 올리거나 얼음 자체에 우유나 밀크티 등 맛을 넣어 만든다. 거기다가 수박이나 메론 등을 통째로 내놓거나 썰어먹는 빙수 등 매년 새로운 재료와 형태의 빙수가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새 다가온 여름, 올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는 빙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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