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그 해(기원전489년) 가을이었다. 초나라 소왕이 성보의 진중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가 쉽게 초나라를 떠나지 못하여 머물고 있을 때였다. 세인들에게 기인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이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이런 난세에 무엇 하러 나왔느냐
어제의 꿈을 버리면 또 내일이 열릴 것을
정치에 희망을 걸어 보았자 무엇을 하겠는가.

공자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수레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는 흔적도 없이 달아나 버렸다. 공자는 초나라를 떠나 다시 위나라로 돌아갔다. 공자는 그때 이미 63세가 되었다.

노나라 애공 14년(기원전 481) 봄이었다. 노나라 서쪽 원야에서 사냥 대회가 열렸다. 대부 숙손씨의 마부 서상이 희귀한 짐승을 잡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처음 보는 이 희귀한 짐승 앞에서 그저 기분 나빠할 뿐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자세히 짐승을 살펴보고 나서 “이것은 기린이라는 짐승이다. 성인의 세상에나 나타나는 어진 짐승인 것이다.” 그렇게 말했으므로 모두가 안심을 했다.

평소부터 공자는 “용마도 신령스런 거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마침내 성왕을 만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는 것인가?”하며 몹시 침울해 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가장 사랑하는 제자 안회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 나는 하늘에게서 버림받은 자이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즈음에 기린이 나타난 것이었다.

어진 짐승이 나타나도 사람들이 그것을 식별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아, 나도 이제 마지막이다. 어느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이 세상을 마친다 말인가.” 공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말을 자공이 가로막았다.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뜻밖입니다.” “아니다. 나는 하늘을 원망하는 것도 사람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고매한 것까지 온갖 것의 탐구를 지향해왔다.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것은 하늘뿐인가 하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끝까지 신념을 관철하고 한 몸에 결백을 지킨 사람은 백이, 숙제다. 유하혜와 소연은 신념을 굽히고 조정에 나아갔다. 우중과 이일은 은둔했으면서도 침묵을 안 지키고 제멋대로 지껄여대었다.

그러나 결코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세상을 버릴 적에는 때가 따라 주었다. 그런데 내 처지는 다르다. 그렇다고 미리 진퇴를 정해 놓고 행동한 것이 아니다. 의에 따랐을 뿐이다.” 공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그래도 좋다. 하지만 군자라면 죽은 다음 이름을 칭송받아야 할 터인데 나는 어떤가. 이상은 무엇 하나 달성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후세에 남기면 좋단 말인가?”

공자는 그 뒤부터 노나라 사서를 읽고 <춘추>의 집필에 착수하여 은공으로부터 애공 14년에 이르는 12대의 역사를 정리했다.

<춘추>는 노나라의 사서이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실로서 주나라의 존재를 명백히 하고 하, 은, 주 3대의 사적을 논했다. 글은 간결하지만 뜻이 깊다. 가령 오나라와 초나라의 왕이 왕을 자칭했으므로 이 두 왕을 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자(자작)라고 기록했다. 또 천토의 회맹은 실은 진후가 천자를 소환한 것이었으나 그것을 좋게 보지 않고 다만 “천자 하양에서 사냥을 하시다”라고 기록했다.

이런 필법에 의해 세상을 바로잡고 훼방과 칭찬, 선악의 의를 뚜렷이 한 것이다. 그것은 군주를 죽인 난신, 아버지를 죽인 사람의 행위를 특별하게 기록함으로서 후세 사람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왕자에게 대의를 시행시키려는 의도에 의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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