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편집인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공식 발효됐다. 자동차를 비롯해 의류·보석·와인 등 다양한 소비재의 관세가 차차 철폐되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실상 FTA가 발효됐음에도 자동차와 와인 등 소수 품목을 제외하면 소비자가 실제로 가격 인하 혜택을 보는 제품은 예상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유럽 현지에 나가 있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등 대기업 현지 법인들도 FTA가 발효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카렐 데 휘흐트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달 30일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 한국과 EU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한EU FTA 잠정 발효 기념 리셉션’ 개막사에서 “7월 1일 발효되는 한EU FTA가 양측 간 교역을 확대하고 관련 절차를 쉽게 해줘 양측을 번영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FTA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 국가들 간에 공통의 가치를 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해 나아가는 것으로 정치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사실 이번 EU FTA는 아시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처음으로 체결한 것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요즘 유럽에 부는 한류 이른바 케이팝(K-POP) 열풍도 한국의 EU시장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카렐 데 휘흐트 집행위원의 말처럼 “한EU FTA는 공정 경쟁의 규칙을 토대로 삼아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지적재산권과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까지 포괄하는 신(新)세대 FTA”라 할 수 있기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EU와의 이번 FTA는 우리나라 교역에 있어 중국 다음으로 큰 제2시장이라는 평이다.

물론 모두가 이번 협정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정을 다분히 고무적인 일이라 평하는 데는 장기적으로는 자본축적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실질 GDP가 최대 약 5.6%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점과 교역 증가로 단기적으로 3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증대가 이뤄질 경우 취업자 수는 25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산성 증대효과가 없더라도 일자리 증가규모가 4만 78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산업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등 10개 연구기관의 분석을 본다면 어쨌거나 이번 협정은 기대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한EU FTA의 최대 수혜품목인 한국산 자동차부품의 국가별 수출 유망 품목에 주력한다면 타이어를 비롯해 머플러 및 배기 부품, 리튬이온 배터리 등이 유망 수출 품목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세가 철폐된다 하더라도 업체에서 가격을 올리면 국내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똑같거나 그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부 품목에서는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이번 협정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후 EU와 FTA를 맺을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경제영토 전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동차와 IT 등의 분야에서 앞서간다고는 하지만 자칫 하다가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이왕 발효된 FTA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할 듯 보인다.

토마스 코즐로프스키 주한 유럽연합(EU)대사는 “한EU FTA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고 유럽과 아시아, 유럽과 한국의 거리가 단축됨으로써 재화·서비스·아이디어들이 양쪽에서 좀 더 자유롭게 전달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즐로프스키 대사에 따르면 이번 한EU FTA는 경제적 파트너십이자 동맹이지만 교역의 증진을 통한 재화, 서비스 교류 증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협력도 증대되는 이점이 있다.

이번 협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은 한EU FTA를 단순히 경제 성장만 촉진하는 엔진역할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는 문화의 통로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유럽에서 케이팝(한국대중음악) 공연이 열린 것이나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유럽에서 출판되는 것 등도 단순히 한국제품이 유럽에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품이나 재화(財貨)라는 물질적인 측면의 상품을 뛰어넘는 대한민국만의 문화와 전통이 세계 각국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물론 FTA 이전에도 전 세계적으로 우리네 전통과 문화의 유수함과 찬란함이 인정받기는 했지만 세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찾을 수 있는 기회이자 유럽에서의 인지도가 상승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케이팝, 드라마, 한국작가들의 선전 등)과 FTA에서 보이는 자동차(부품)․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수출의 영향력 등은 한민족의 창의성과 슬기로움과 같은 우수성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에는 러시아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국내에서 기초를 다진 한국의 음악가들이 남녀 성악 부분 각각 1위, 피아노 부문 2,3위, 바이올린부문 3위에 오르는 등 5명이 한꺼번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는 세계 3대 콩쿠르에 속하는 것으로 콩쿠르 역사상 한 나라에서 5명이 동시 입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우수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자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그 창의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상품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전통과 문화, 창의성이 전 세계에 수출되는 한EU FTA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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