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AP/뉴시스】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2019년 6월 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산책하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2019년 6월 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산책하고 있다.

백신 부족한 개도국 공략

러 백신을 中에서 생산 ‘공조’

서방 “의도 의문” 우려 목소리

“실제 성과 얻을 지는 불분명”

[천지일보=이솜 기자] 중국과 러시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계기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백신 외교전에서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 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2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은 멕시코, 인도, 아르헨티나 등 개발도상국을 포함해 60여개국에서 사용이 승인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을 지난 한달 동안 2억 6천만회분 이상 제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협력은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적 백신 목표가 점점 더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곧 개발도상국들을 돕는 것이다. 개도국들은 대유행 이후 백신 사재기로 비난을 받아온 서방 동맹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중러 관계 전문가이자 전 모스크바 주재 호주 부국장인 보보 로는 CNN에 “모스크바와 중국 모두 대유행에서 지정학적 이득을 볼 기회를 가졌다”며 “서방이 백신 제공에 있어 개도국에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에) 유용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신임을 떨어뜨리고, 특히 중국은 자국의 명성을 빛내며 세계 지도자로서 스스로를 홍보할 기회를 열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방 동맹들 중·러에 러브콜

러시아는 작년 8월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했다고 발표한 세계 첫 국가로, 1957년 발사한 인공위성의 이름을 따서 스푸트니크V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푸트니크V는 개발 초기 임상 3상시험 등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의심이 일었으나 지난 2월 랜싯에 발표된 한 예비 결과에서 91.6%의 효과를 발표하면서 논란이 완화되는 분위기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국제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긴급사용을 허용한 중국 시노팜 백신만 공급되고 있으나 이미 수억개의 스푸트니크V 백신이 중국의 시노박과 시노팜 백신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권이었던 중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같은 나라들이 백신 생산량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 중국 백신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듀크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스푸트니크V 백신 3000만회분, 시노팜 400만회분 등을 주문했다. 아르헨티나는 미국산 화이자 백신에 대한 거래는 성사시키지 못했다.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인도네시아는 인도의 코로나19 폭증세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급이 1년이나 지연되자 시노박 백신을 주문하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듀크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지금껏 시노박 백신을 1억 2500만회분 이상 주문했는데, 이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양이다. 시노박 백신을 두 번째로 많이 구입한 국가는 미국의 ‘중요한 지역 파트너’인 터키다. 터키는 중국 백신 1억회분을 구입해 지난 1월부터 1차 접종에 들어갔다. 화이자 백신이 터키에 도착하기까지는 4개월이 더 걸렸다. 터키 정부는 심지어 수십만개의 초과 시노박 백신을 리비아에 보내기도 했다.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는 지난 2월 세계 곳곳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 구매 요청이 25억회분 이상 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시노팜은 5억회분의 주문을 받았다. 시노박은 4억 5천만회분의 주문을 받았으며 이를 제조하기 위한 기술을 10개국에 이전해 빠른 공급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중국의 백신 공급 대부분은 기부보다는 판매였으나 씽크글로벌헬스가 분석한 결과 지금껏 중국 정부가 백신을 기부한 65개국 중 63개국은 시진핑 국가 주석이 추진 중인 신(新) 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의 일환에 포함된 나라들이었다.

지난 2일 영국의 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서방 국가들이 백신 외교전에서 패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고 “서방 선진국들의 평판은 이미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이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향후 몇 년 내 개도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지가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美 동맹전선 대항해 중·러 밀착

CNN은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 생산 공조에는 양국 정상의 친분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시 주석은 2019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을 “최고이자 단짝 친구”라고 말했고 푸틴 대통령도 시 주석과의 친분을 두고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는 작년 4월 “우리 두 나라는 2차 세계대전 때처럼 공동의 적에 대비해 손을 맞대고 싸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양국의 협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중러를 압박하기 위해 우호국 연합 구축에 점점 더 주력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로 전 부국장은 “장기적으로 친밀감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모두 정부에 대한 서방측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한 자리에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백신 외교 효과 있을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양국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3월 연설에서 “새로운 유형의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개도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백신을 이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스푸트니크V 백신을 자국민이 아닌 개도국에 더 공급하고 있는 배경의 동기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자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 수백만회분의 백신을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며 “이는 대답을 해야 할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러시아 인구의 5.9%만이 완전히 백신을 접종했다. 중국은 지난 7일까지 3억회분 이상의 백신을 투여했다고 밝혔으나 이 수가 1차인지 2차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노력이 실제 정치적 성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정치학 교수인 주디스 트위그는 코로나19 백신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특허법을 포기한 것을 포함한 다른 조치들이 현재의 백신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유행의 끝 무렵에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백신을 접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트위그 교수는 “앞으로 1~3년 후 중국과 러시아 백신을 먼저 받은 나라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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