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나는 눈이 멀었다. 교통사고로.

윤화(전차·자동차 재해)의 충격은 뇌진탕을 동반해 나의 시신경을 망가뜨려버렸다. 뇌 속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시력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입영 영장을 받고 난 이틀 뒤 당한 날벼락이었다. 손의 감각기능이 특이해진 건 내가 소경이 되고 난 뒤에 생겨난 현상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손바닥은 사람 몸을 훑으면 어느 곳의 근육이 결리고 뭉쳐 있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손길은 그런 증상에 아주 특효를 보였다. 이상이 있는 부위를 내 손이 훑으면 열기에 얼음이 녹듯 근육이 잘 풀리는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까지 나는 느낄 수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신기한 능력이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생이지지(生而知之) 수준의 하늘이 내리는 시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신은 나한테서 시력을 빼앗은 대신에 엉뚱한 기능 하나를 보상으로 준 셈이었다. 청춘이 불쌍하니 호구지책으로 삼으라는 계시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안마사가 되었다. 나는 고객의 몸을 장인이 악기를 조율하듯 다루었다. 그러면 내 손길이 닿은 악기들은 모두 제 소리를 되찾아 예전의 화음을 회복했다. 그 조율 효과는 나한테 안마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모두 다 인정하는 터였다. 내 손이 ‘약손’이라는 소문이 나자 갈수록 나를 찾는 손님이 많아졌으며 단골도 늘어났다.

한편으로 나는 무뚝뚝한 안마사로도 호가 났다. 의례적인 인사말 외에는 단골들한테마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손으로 대화를 했으므로. 손바닥으로 고객들의 몸 상태를 읽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이를테면 중년부인인 A의 경우, 나를 찾아올 때면 그녀의 몸은 진기가 다 빠져 있는 상태다. 내 손바닥은 그것이 섹스를 심하게 하고 난 뒤의 증상이라고 단박에 알아차린다. 말하자면 아주 정숙하게 보이는 그녀는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는 것이다. 젊은 애인을 숨겨두고 정기적인 만남을 즐기면서 말이다. 이런 사실을 내 손바닥은 그야말로 손금 보듯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알아서 섹스의 독을 빼어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전신을 훑어 조율을 끝내면 그녀는 생기가 도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야 몸이 풀리네요. 나이가 드니까 옛날 같지 않아 운동을 좀 심하게 하면 몸살기가 나타나지 뭐예요.”
B씨는 도박광이다. 그는 곧잘 목과 어깨, 그리고 팔의 근육이 뭉쳐 있다. 노상 긴장한 상태로 앉아서 마작이나 포커, 화투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말로는 골프를 너무 심하게 하는 탓이라고 했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부당’이다. 그는 도박벽을 고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수명을 줄잡아 10년쯤 앞당길지도 모른다. 물욕에 집착해 오래 앉아 있는 건 마음을 비우는 선방(禪房)의 장좌(長座)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건강에는 아주 나쁜 것이다. 어쨌든 그가 나를 찾아올 적에는 돈을 땄을 때보다는 잃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처음 맞이한 고객이었는데, 그의 몸에 손을 대자 나는 아주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으스스하면서도 끈적거리는 냉기였다. 그 냉기 속에는 가는 바늘이 무수히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을 만지는 순간 보이지 않는 작고 촘촘한 가시가 내 손바닥을 찔러대는 듯한 따끔거림이 분명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살기(殺氣)! 내 손의 감각은 분명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아 나는 평소의 나답지 않게 손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몸에 섬쩍지근한 기운이 돌고 있네요.”
고객은 삼십 대의 아직 팔팔한 사내였다. 내 말에 사내가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제대로 느끼셨네요. 오늘밤 사기꾼 한 놈의 목을 따려고 하니까요.”
사내의 대꾸에 내가 깜짝 놀라자 그가 다시 덧붙였다.

“농담이구요, 아마 심한 정신적 압박감이 온몸을 짓눌러서 그런 걸 겁니다. 또한 그 해소를 위해서 이곳을 찾은 거고요.”
그래, 누굴 죽이고자 한다면 당연히 온몸의 근육이 지레 긴장되겠지. 나는 사내의 말이 결코 농담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안마를 하는 동안 내 손바닥은 지속적으로 그 서늘하고 끈적이는 ‘따끔거림’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라디오에서 이런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를 살해한 사건이 간밤에 있었습니다. 함께 사업을 하다 몰래 자본을 빼돌리고 회사를 망하게 한 친구를…”

지난 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피의자는 범행 직후 바로 자수를 했다고 한다. 눈이 먼 이후부터 라디오로 아침 뉴스를 꼭 챙겨 듣던 나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 어제의 그 사내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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