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여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백신 여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리스·태국 등 관광국 도입 추진

접종률 낮은 獨·佛 입장 유보

WHO 반대 입장 공개 표명

차별 심화·사생활 침해 문제도

[천지일보=이솜 기자]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이에 따른 ‘백신 여권’ 도입 추진에 나섰다.

백신 허가증 또는 백신 여권이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음을 증명하는 문서다. 또는 코로나19 검사 결과도 담을 수 있다.

백신 여권을 통해 관광 등 산업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가정이 안전하게 모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각에선 윤리적·현실적 문제가 있다며 반대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 백신 여권 검토

가장 최근 코로나19 백신 여권 도입 의사를 밝힌 나라는 중국이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7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중국판 국제여행 건강증명 전자서류를 선보일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과도 백신 접종의 상호 인증을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유럽의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그리스와 스페인 같은 일부 주요 관광 국가들도 유럽연합(EU)에 백신 여권을 도입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EU는 지난 5일 27개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백신 접종 증명서 인증을 위한 디지털 시스템 구축 작업 돌입을 밝힌 바 있다.

영국도 백신 여권을 검토 중이며 태국 정부도 백신 여권을 도입해 해외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도 연방 기관에 백신 여권과 관련한 옵션을 요청한 바 있다.

5백만명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이스라엘은 이미 백신 2회 접종을 마쳤거나 코로나19 음성이 확인된 사람들에게 자체적으로 ‘그린 패스’를 줘 체육관이나 식당 출입, 공연장 등의 출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3일 여러 국가 간 논의를 통해 백신 여권 관련 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빈부격차·면역 기간 등 논란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백신 여권을 도입하거나 도입 논의 중에 있지만 일각에서는 반대 입장도 거세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국가 내외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으며 백신을 접종하고도 코로나19를 전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 여부로 세상을 나누는 것은 위압적인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난 2일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백신은 압도적으로 부유한 나라와 그들 내부의 특권층에게 먼저 주어지고, 예방접종자에 대한 특별권을 부여하는 한편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이미 위험한 사회적 격차가 더 벌어질 위험이 있다는 설명이다.

8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전 세계적으로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고, 공평한 기반에서 접종할 수 있지도 않다는 점이 분명하다”며 백신 여권이 국제 여행에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허가된 백신의 접종 면역력이 얼마나 오래가지는지 불명확한 상태로, 아직 연구 중인 점을 강조했다.

멜린다 밀스 옥스퍼드대 인구과학센터 소장도 WP에 “백신이 바이러스의 전염을 줄이는 정도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여전히 없는 상태로, 백신을 맞은 여행객들이 스스로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이라도 백신 접종률이 각각 달라 입장이 나뉘기도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백신 여권에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두 나라는 백신 접종률이 낮아서 백신 여권에 따른 여행 규제가 생긴다면 그들의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백신 여권을 받을 수 있는 기준도 과제다. 백신을 두 번 접종한 사람만 이 여권을 받을 수 있는지, 러시아제 또는 중국제 백신도 상관이 없는지, 백신의 효능을 감소시키는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돼도 이 여권을 사용할 수 있는지, 감염이 특정 선 아래로 떨어질 때 또는 집단면역에 도달할 때까지 이 서류가 없으면 제한되는 활동이 있는지 등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수십년간 몇몇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황열병, 풍진, 콜레라와 같은 질병에 대한 백신을 맞았음을 ‘종이 증명서’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백신 여권은 QR코드 등 디지털 인증 방식이 도입될 예정으로 이 데이터가 여행객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디지털 문서는 스마트폰이 없는 노년층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밀스 소장은 “당장 이것을 도입한다면 연령에 따른 차별로 거대 집단을 배제하게 될 것”이라며 “백신여권은 아마 법정 소송이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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