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차이나타운 인근 LA역사공원에서 반아시아 폭력과 인종차별적 태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집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증오범죄로 숨진 태국 이민자 비차르 라타나팍디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차이나타운 인근 LA역사공원에서 반아시아 폭력과 인종차별적 태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집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증오범죄로 숨진 태국 이민자 비차르 라타나팍디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최근 미국에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확산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내 최소 2개 도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가 늘었다. 뉴욕 경찰도 작년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최소 28건으로 전년 3건보다 증가했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자료에 따르면 작년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는 9건으로 전년 6건, 2018년 4건보다 크게 늘었다.

이달 들어 아시아인을 공격한 몇 개의 영상이 공유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증폭됐다.

영상에서는 뉴욕시 기차에서 한 필리핀인 남성이 커터칼로 베였으며, 퀸즈 플러싱에서 52세 여성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한 아시아인 여성이 얼굴을 주먹으로 맞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 남성이 버스정류장에서 지팡이로 맞았다.

이런 사건들로 아시아인들은 공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범죄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혼자라는 느낌을 갖게 됐으며 많은 가해자들이 누구였는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아시안계 증오범죄를 막기 위한 민간 순찰대가 결성됐다. 지난달 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아시아계 노인이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자원봉사 순찰대는 주민들에게 호루라기를 나눠주거나 범죄를 경고하고 노인들과 함께 걸으며 보호에 나섰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거리 순찰에 참여하고 뉴욕에서도 집회를 조직한 활동가인 윌 렉스 햄은 WP에 “사람들은 도움을 기다리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며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동맹이나 필요한 자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 힘으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태국계인 비차 라타나팍디(84)가 폭행을 당해 사망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범죄에 관심이 몰렸다. 그의 딸 에이미 라타나팍디는 이 사건이 증오범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무의미한 폭력 행위로, 우리 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나의 자녀들도 거리에서 인종차별 욕설을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달 초 출근길에 뉴욕 지하철에서 얼굴을 베인 필리핀 남성 노엘 퀸타나(61)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퀸타나는 경찰에 범행을 신고했고 용의자는 폭행죄로 기소됐다.

그러나 많은 사례들이 퀸타나처럼 용의자를 잡는 데까지 오지 못한다고 WP는 전했다. 소외된 지역사회의 피해자들은 문화적 차이, 언어 장벽 또는 불신 때문에 경찰을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를 했더라도 자신이 인종 때문에 표적이 됐음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비차 라파나팍디를 살해한 앙투안 왓슨(19)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국선 변호인은 이날 NBC뉴스에 “라파나팍디의 민족성과 나이가 폭행의 동기부여 요인이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가해자가 정신건강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체적으로 이런 사건들을 추적하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안들의 권리 단체들이 연합한 ‘스톱 AAPI 헤이트’는 작년 3월에 출범했는데, 작년 말까지 미 전역에서 인종적 동기의 폭력과 괴롭힘에 대해 2808건의 자체 신고를 받았다. 이 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례들 중 9%는 물리적 폭행, 71%는 언어 폭행이었다. 피해자 중 대부분이 여성이었으며 126명은 60세 이상이었다. 41%는 중국인이었고 한국인(15%)이 두 번째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베트남인은 8%, 필리핀인 7%였다. 아시아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은 사례가 나왔으며 뉴욕이 약 13%로 그 뒤를 따랐다.

일부 아시아 지역 사회는 이번 보고서 이상으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오클랜드에 있는 중국계 이오나 청은 “그들(가해자들)은 종종 문화적 이유로 아시아 여성들을 공격한다”며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거나 기소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를 잘 못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할리우드의 중국계 배우 타지 마는 “반(反)아시아 정서에 관한 한 누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계가 없다”며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떤 기여를 하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초기 패서디나의 홀푸드 주차장에 있던 행인에게 “격리하고 있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부 법 집행 기관들은 증오범죄 차단에 나서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시의 경찰국은 이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주로 아시아계가 많은 지역에 경찰력을 증강시켰다. 뉴욕 경찰에는 아시아인 전담반 형사 25명이 11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스튜어트 루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뉴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범죄로 최소 18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미 연방의회 ‘아시아태평양 코커스’ 소속 의원들도 아시아계 혐오범죄 급증에 대한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청문회 개최 등 대응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디 추 하원의원은 “미국 사회가 무시할 수 없는 위기 지점에 도달했다”며 이런 사건들이 코로나19 가운데 반아시아 성향과 외국인 혐오 확산의 일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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