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내가 다시 옥희를 만나 건 동창회장에서다. 햇수를 따져보면 근 40년 만이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어릴 적 과거를 나는 되도록이면 잊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끗발이 센 고향 선배의 권고가 있어서였다. 선배는 청와대의 신임 수석으로 중용된 분이었는데, 재경 동문회 회장직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개교 50주년이라서 행사를 전국적으로 하기로 했네.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경기도를 포함한 재경 동문들은 서울에서 별도로 모이는 것이니 꼭 참석하게.”

50년 전통을 가졌다고는 하나 소읍의 시골학교라 서울에 진출한 졸업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동기생들은.
“이기 누고.”
분명 같은 기수요 이름도 똑같았다. 그러나 옥희의 얼굴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긴 40년이면 뭔들 변하지 않겠는가. 그녀 역시 나를 한눈에 알아차리지는 못했으리라.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건 옥희의 손이었다. 반가움에 악수를 나누었을 때 그녀의 손은 얼굴보다 더 변해 있었다. 나이보다 좀 더 늙어 보일 뿐 자세히 보면 얼굴은 옛날의 그 깜찍한 모습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손은 그게 아니었다. 세파에 몹시 부대낀 듯 손바닥이 거칠었고 손마디가 굵어져 있었다. 어쩌면 내 기억 속의 손이 ‘천사의 손’으로 너무 과장되게 입력이 되어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제 인생 오십이 지나 다시 잡아본 옥희의 손은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불현듯 옛 추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5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처음 등교한 날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손 검사’를 실시했다. 당시에는 ‘위생검사’라는 게 있었는데, 주로 손의 청결 상태와 이를 닦는지 안 닦는지가 중점 대상이었다. 그때 선생님은 제일 지저분한 손의 임자로는 나를 지적했고, 가장 깨끗하고 예쁜 손의 주인공은 옥희를 꼽았던 것이다. 선생님은 옥희와 나를 교탁 앞에 불러 세웠다.

“자, 이 두 손으로 밥을 먹는다 치자. 어느 손으로 먹는 게 더 맛있을까?”
아이들이 쿡쿡거리며 웃자 나는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예 창피를 주자고 작정을 했는지 이번에는 선생님이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더니 말을 이었다.

“네놈이 머리는 좋다만, 영리함도 게으르면 아무 쓸모가 없어. 옥희의 손을 직접 한번 잡아봐. 네놈 손과 어떻게 다른지. 노력하기에 따라서 사람의 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네놈은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어.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자신의 손을 이 따위로 만드는 건 나태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옥희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 잡아본 옥희의 손, ‘천사의 손’이었다.

한데, 당시 선생님은 왜 굳이 나로 하여금 옥희의 손을 직접 만져보도록 한 것일까. 성적은 우수하지만 가난한 집 아들인 나에게 정말 생생한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서?

문제는 옥희의 반응이었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내가 그 희고 예쁜 손을 잡자 그녀는 그만 울어버렸던 것이다. 아마 내 더러운 손이 자신의 손을 만지자 분하고 창피해서 그런 성싶었다. 그때의 그 난감함이라니!
당시의 이런 일을 옥희는 기억하고 있을까.

“얼굴은 여전히 예쁘네.”
차마 손은 여전히 예쁘네, 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이런 식으로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옥희는 나에게 잡힌 손을 슬쩍 빼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거칠어진 이 손이 오늘의 내 현실이야. 어쩌면 너는 속으로 통쾌하다고 여기겠지?”
하면, 옥희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걸까.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된 게 10년 전이라고 했다. 친정이 망한 것도 그 즈음이란다. 하긴 성냥공장이야 어차피 사양사업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옥희의 사정을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주부가 갑자기 생활전선에 나서 정상적으로 돈을 벌 일은 ‘손을 혹사시키는 일’밖에 없었어. 아이들 둘 치다꺼리까지 하느라 어느새 두 손이 다 이 꼴이 된 거지.”
그러면서 옥희는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는데, 이어 덧붙인 말은 이랬다.
“그거 알아? 여자의 손은 팔자가 만든다는 거.”

이날 나는 꽤 술을 마셨다. 과음을 한 건 어쩌면 이제 ‘천사의 손’을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한 내 나름의 의식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 비틀걸음으로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놀랐다. 나이 오십에 접어들고부터 내가 무모하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아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얼른 나를 부축하여 소파에 앉힌 아내는 옷부터 벗겼다.
바쁘게 움직이는 아내의 손. 이때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아내의 손은 무척 희고도 예뻤다.
“야, 오늘 보니 당신 손이 꼭 천사 같네.”
혀가 꼬부라진 나의 뜬금없는 말에 아내가 싱겁기는,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정색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나이에 이렇게 손이 예쁜 게 다 누구 덕인지 알아?”
내가 게슴츠레해진 눈을 애써 부릅뜨자 아내가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알았어. 그게 다 당신 덕분이야. 능력 있는 남편을 둔 덕.”
이러면서 나를 침대로 데려가 눕혔다. 그러자 나는 만족하여 잠결로 빠져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여자의 손은 팔자가 만든다잖아. 그리고 그 팔자는 바로 남편한테 달려 있는 경우가 많은 법이지. 당신은 그걸 알아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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