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변호사 비밀유지특권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진제공:올댓시네마)


속물 변호사, 가장 악랄한 의뢰인을 만나다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과 전혀 연관이 없다. 단지 주인공 미키 할러(매튜 맥커너히)가 사무실처럼 사용하는 링컨 콘티넨탈이 등장할 뿐이다.

미국과 국내 대통령들의 의전 차량으로 사용되는 이 최고급 미국산 자동차를 변호사가 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사연은 이렇다. 사법 제도에 걸려든 뒷골목 범죄자들 사이를 오가며 한 번에 5~6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변호사’ 할러에게 운전기사가 딸린 링컨 콘티넨탈의 뒷좌석은 가장 이상적인 사무실이다.

링컨 콘티넨탈은 집세를 낼 돈도 없으면서 부의 상징인 최고급 자동차만을 고집하는 할러라는 캐릭터의 모순되고 복잡한 특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실제 변호사 업무가 거의 차에서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할러가 링컨 차를 타는 핵심적인 이유는 겉치장으로 돈 많은 의뢰인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이 영화는 돈 많은 의뢰인의 사건을 해결해주는 변호사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변호사 비밀유지특권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이다. 변호사 비밀유지특권법은 ‘변호사가 의뢰인과 나눈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비밀로 해야 하며 이는 증거로도 채택될 수 없다’고 명시하는 법 조항이다.

할러는 의뢰인 루이스 룰레(라이언 필립)에게 큰 액수의 돈을 받고 변호를 맡게 되는데, 변호를 진행하는 중에 루이스의 또 다른 범행을 눈치 채게 된다. 그리고 할러는 루이스가 자신을 변호사로 일부러 지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후 할러는 돈에 눈이 멀어 악랄한 의뢰인의 미끼를 덥석 물게 된 것을 곧 후회한다. 4년 전 할러는 결백을 주장하는 의뢰인 마티네즈(마이클 페나)의 말을 믿지 않고 감옥에 보냈는데, 그 사건의 진범이 사실은 루이스 룰레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매춘부를 폭행한 수준이지만, 4년 전 사건은 잔악무도한 살인 사건이었다.

속물 변호사와 악랄한 의뢰인의 흥미진진한 게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변호사 비밀유지특권이라는 사법제도 장치 때문에 명백한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음에도 그 어떤 증거도 이용할 수 없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할러. 그가 루이스가 쳐놓은 덫에서 빠져나가 어떻게 영리한 반격을 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아쉽게도 범죄 스릴러의 거장인 마이클 코넬리의 원작 소설이 매끈하고 세련된 영화로 탄생했다는 평론가의 평가와는 달리, 관객입장에서는 범죄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 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영화 속 미키 할러(왼쪽)와 의뢰인 루이스 룰레(오른쪽) (사진제공:올댓시네마)
루이스 룰레가 순진한 얼굴을 한 살인마라고 한다면, 왜 그가 매춘부를 폭행하고 살해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영화 후반부까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변호사와 검사, 경찰들과의 불편한 마찰을 나열하며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사건의 키와 긴밀성을 갖지 못하고 맥이 빠져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할러의 전부인 매기, 개인 수사관 프랭크, 약물중독자로 등장하는 매춘부 등도 볼륨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지 못했다. 그 와중에 가장 흡입력 있는 역할로 분했어야 하는 루이스 룰레도 알고 보면 어머니의 그늘에 있었던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는 게 아쉽다.

결국 링컨차를 타는 할러의 존재감만이 뚜렷하다. 범죄 스릴러는 멜로드라마처럼 주인공만 멋지면 다 되는 장르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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