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수천명의 시민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수치 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리본을 팔목에 묶거나 머리에 두르고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6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수천명의 시민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시위대가 수치 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리본을 팔목에 묶거나 머리에 두르고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양곤서 수천명 모여… 충돌 無

군정, 시위확산에 인터넷 또 차단

쿠데타 이후 최소 147명 구금

“군부, 세계 등지고 뭐든 할 것”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수천명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서는 등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군사 정권이 인터넷까지 차단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을 막지는 못했다.

미얀마 현지 매체와 외신 등에 따르면 6일 수천명의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의 쿠데타에 항의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에 나선 데 이어 7일에도 시위가 이어졌다. 

양곤의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대가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며 작년 11월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사진 등을 내보였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군부는 시위를 막기 위해 미얀마 전역의 인터넷을 차단했다. 네트워크 모니터링 단체인 넷블록스는 이날 오후까지 인터넷이 보통 수준의 16%까지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앞서 군은 이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모두 차단했다.

그럼에도 수천명의 시위대는 양곤 대학 근처에 모였다. 이 중 많은 참가자는 수치 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리본을 팔목에 묶거나 머리에 두르고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이는 태국 민주화 시위대가 저항을 상징하는 손 모양과 같다.

군부는 인근 도로를 봉쇄했고, 물대포 차량 등이 배치됐다. 일부 시위대는 이후 해산했지만 다른 시위대는 현장에 남아있었다. 시위대와 군부 사이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의 때마다 등장한 냄비의 역사

최근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의료진과 교사 단체까지 합류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일부터 매일 저녁 8시에 주민들이 분노의 표시로 냄비와 팬을 때리며 쾅쾅 소리를 내는 항의 방식은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냄비와 팬으로 소리를 내는 행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기간 일부 국가들에서는 주민들이 밤 7시에 필수 의료 종사자들의 야간 근무 시작을 응원하기 위해 그들의 주방용품으로 소리를 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여성들이 경제 상황과 식량 부족에 항의하기 위해 집 밖에서 냄비를 부딪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중남미에서도 그릇과 냄비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칠레에서 여성들이 마르크스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알렌데의 당선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1984년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한 항의의 소리와 2001년 아르헨티나의 재정 위기, 2013년 베네수엘라 선거, 2020년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로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항의까지 여성은 삶이 통제된 상황에서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자신의 의견을 나타낼 방법으로 주방도구를 택했다.

미국에서도 작년 여름 시위대가 냄비와 팬 등을 사용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부당성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점점 커지자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야간 통행금지를 발령했고, 밖으로 나가 행진할 수 없는 사람들은 주방용품을 집어 들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2009년 금융위기에 항의하기 위해 약 2천명의 사람들이 의회 근처에 모여 냄비를 두드렸다. 이 시위는 ‘냄비와 팬’ ‘주방용품 혁명’ 등으로 불렸다. 시위대는 또한 다른 주방 용품을 가져와 시위대를 해산하려는 경찰에게 파스타 쟁반을 던지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최근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냄비와 팬을 들었다. 작년 3월 펠리페 6세 국왕의 아버지와 관련된 금융 스캔들에 화난 스페인 시민들은 주방용품을 때리기도 했다.

◆시민들 군부 억압 불안감 커져

양곤의 주민들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과거 50년간의 군부 통치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안고 있는 가운데 수치 고문을 통해 민간 정부가 들어온 10년간의 세월이 모두 헛수고가 됐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날 CNN방송에 따르면 미얀마는 지난 군부 통치 이후 몇 년 동안 사회적 자유, 외국인 투자, 중산층 증가 등 현저히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10년 전 1천 달러였던 SIM카드는 이제는 훨씬 싸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도 활성화돼 미얀마 주민에게는 인터넷은 곧 페이스북이라고 인식이 될 정도로 SNS 활동이 일상이 됐다. 깊은 경제·불평등 문제, 민족·종교 갈등은 여전하지만 미얀마는 10~20년 전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곳이 됐다.

국내외로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압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쿠데타를 이끈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의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하다.

미얀마에서는 비평가, 운동가, 언론인들을 겨냥한 광범위한 탄압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지난 1일 이후 군부가 최소 133명의 정부 관리와 국회의원, 14명의 활동가들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수치 고문은 수출입법 위반 혐의로 가택연금 상태에 있고, 축출된 윈 민 대통령은 자연재해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트워치 아시아 부국장은 가디언에 “미얀마 군부는 세계를 거부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그들은 셔터를 내리고 목소리를 높인 모든 사람들을 위협하고 체포하고 학대할 것이다. 문제는 군부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경찰이나 군부 내 분열이 있을지 여부다”라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