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커피 중독,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 뭐 이런 말들은 흔히 들어 봤어도 육포 중독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필자가 요새 육포를 계속해서 찾는 바람에 스스로에게 쓰는 표현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육포는 고기를 얇게 저며서 간해 말린 음식이다. 햇빛에 말렸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여행이나 비상식량으로도 용이하게 쓰이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소 들소 말 염소 양 돼지고기 참치 연어 꿩 거위 칠면조 닭 사슴 캥거루 타조 악어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종류의 육포가 있고, 아마도 우리가 쉽게 구입해서 먹을 수 있는 종류에는 소나 돼지고기, 칠면조 정도가 될 것이다.

옛날에 비해 음식이 풍부해진 우리나라도 육포를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육포가 고가 식품으로 여겨져 폐백이나 이바지, 제사 등에 쓰이거나 귀한 손님이 오시면 내오던, 쉽게 보지 못했던 음식이었다.

육포라는 것은 이곳저곳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유목 민족이 식량을 오랜 기간 저장하기 위해 가벼운 형태로 만든 음식이다. 네안데르탈인 때부터 육포가 시작되었다는 연구발표도 있었지만, 현재 나사(NASA)에서 우주항공인들이 먹는 음식으로 발표되기도 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식품이라는 생각에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신라 신문왕 3년의 폐백 품목에 육포가 사용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보다 훨씬 오래된 육포 역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음식이 풍부한 나라라는 건 모두 알고 있을 것인데, 풍부한 음식 덕인지 이 귀한 육포를 일반 슈퍼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가 있다. 가격은 한화로 한 봉지당 약 5000원 정도다. 한 봉지엔 10~12개 정도의 일정하지 않은 형태로 잘려진 육포가 들어있는데, 입맛이 없을 때나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할 때 아주 요긴한 간식거리로도 좋은 영양식이 되어준다.

채식을 위주로 하는 필자도 타국 생활을 하다 보니 똑같은 밥을 먹어도 왠지 늘 부족한 느낌이 들어 어느 날 부터 육포라는 것을 입에 대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예 장을 보러 나갈 때 마다 꼭 사는 품목이 되어버릴 정도로 육포에 중독이 되었다고나 할까. 일주일에 몇 봉지씩 뜯어 간식으로 먹으면 왠지 배불리 한 주를 보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까지 하기 때문에 고기요리 대신용으로 자주 먹는다.

고기의 피 냄새가 싫어서 피했던 필자가 이상하게도 육포 중독에 걸린 이유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필자도 이런 이유가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더니, 역시 고기의 특유한 냄새 때문이었다. 육포는 말린 포라 그 냄새가 생고기보다는 훨씬 적을 수밖에 없고, 게다가 양념까지 되어 있다면 더욱 육류의 그 특이한 비린내는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영양보충을 위해서라도 간식이나 반찬으로 이런 방법을 권할 만할 것 같다.

뉴욕에 사시는 고모님께 여쭈어 보니, 이 육포는 궁중에도 있던 음식이라 한다. 궁중 육포 얘기는 난생 처음 듣는 얘기라 정말 재미있게 들었는데, 궁중에서도 특별한 날을 위해 육포를 말리며, 그 말리는 과정을 묘사하면, 여느 일반 육포와는 달리 매우 얇게 저며서 빨랫줄에 널듯이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정성으로 말려진다고 한다. 궁중 육포는 매우 얇은 만큼이나 매우 연해서,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는데, 육포가 씹는 맛이 아니라 입에서 녹는 맛이라니 상상이 잘 안 되었지만, 한번 맛보고 싶다.

육포를 말릴 때는 바람이 좋고 햇빛이 좋은 날 말리는데, 비가 오면 안으로 들여서 말린다. 파리 등 벌레가 앉지 않도록 하는 등 육포가 위생적으로 적절히 연하게 꾸둑꾸둑하게 잘 말려지도록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음식이라 한다.

이렇게 궁에선 정성스레 말려지는 육포를 함께 관리하고, 그 개수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가장 안주인의 몫으로 지밀어머니께서 직접 맡아 하셨다고 한다. 음식에 안주인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한국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필자 고모 도 어릴 때 이 육포 맛에 중독되어, 어머님께 혹여나 들킬까봐 그 개수를 줄일 수는 없었고 여러 육포마다 다니며 조금씩 뜯어 먹고 요기하시곤 하셨다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다 알아차리시고, 크게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고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한국의 육포 맛을 제대로 알게 되면 미국의 육포 맛은 우리 육포의 감칠맛에 댈 것도 아니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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