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미국 공정대원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 ‘제로니모(Geronimo)!’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뛰어내린다. 이를 본받아 아이들이 다이빙 뜀틀에서 뛰어내릴 때도 ‘제로니모!’를 외친다. 이렇게 모험에 뛰어들면서 기합을 불어 넣을 때의 외침인 제로니모는 전설의 아파치(Apache)족 인디언 추장 이름이다.

제로니모(1829~1909)는 미국 애리조나 주 일대를 무대로 활동한 신출귀몰한 전사였으며 주술사였다. 제로니모는 아파치의 영토로 침탈해 들어오는 미국과 멕시코의 협공을 받았다. 그는 이 두 강적을 상대로 싸웠다.

그는 1881년 1500명의 전사를 이끌고 게릴라전으로 미국, 멕시코에 맞서 인디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전투는 5년여 간 계속됐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휘하 아파치 전사들 대부분이 죽거나 포로로 잡힘으로써 1886년 미국 정부에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체포돼 항복하고 미국 정부와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인디언들은 보호소에 수용되게 되며 미 대륙 주인으로서의 인디언의 역사는 사실상 끝이 난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대륙을 인디언의 피로 물들인 이 사건을 인디언의 마지막 폭동이라고 부른다.
 
비록 중과부적으로 투항은 했지만 전투 때의 그는 탁월한 리더십, 용맹으로 아파치 전사들을 이끌어 미국과 멕시코 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얼마나 용맹하고 무서웠던지 그 이름만 들어도 피아간에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

제로니모는 멕시코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본명은 그가 속한 아파치 일족의 키리카후아 (ricahua) 말을 영어로 표기해 ‘하품하는 사람’의 뜻인 고얄레(Goyalee) 또는 고야트레이(Goyathlay), 고야클라(Goyakla) 등이다.

제로니모는 원래 스페인 출신의 가톨릭 성인 이름이다. 고얄레에게 제로니모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은 그가 제로니모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멕시코의 어느 성당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인디언을 지독하게도 혐오하던 신부를 화살로 쏘아 죽이고 사라진 뒤부터다. 그가 성당에 뛰어든 날은 마침 제로니모 성인의 축일이었다.

그는 미사를 집전 중인 신부를 죽이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 이름도 성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에게 사람들이 편의상 제로니모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별명이 그의 이름이 돼버렸다.

제로니모의 보호소 생활은 치욕스러웠다. 동지들을 다 잃어버리고 날개가 꺾인 영웅은 술에 의존해 세월을 보냈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에 대한 선무와 화해의 상징을 조작하기 위해 그를 철저히 이용했다. 각종 공식 행사에 그를 불러 세웠다. 심지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식 장에도 그는 초청되어 갔다.

이런 일들은 그 자신이나 인디언들에게 영광이기는커녕 백인들의 승리감과 우월감이나 만족시켜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구경거리가 됐을 뿐이다. 그래도 비록 허울뿐인 영웅이지만 제로니모의 이름만으로도 그는 명사였다. 그가 가졌거나 만든 물건이면 대중의 큰 관심을 보였으며 불티나게 팔렸다.

그가 최후를 맞는 날도 그는 자신이 만든 화살과 화살촉을 내다 팔기 위해 마차를 타고 나갔었다. 그걸 팔아 만취하게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마차에서 떨어졌다. 어둡고 춥고 땅이 축축하게 언 겨울밤이었다. 아침이 돼서야 그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얼마 안 있어 눈을 감았다.

그것이 1909년 2월 17일 오클라호마에 있는 인디언 보호소, ‘요새(要塞) 씰(Fort Sill)’에서의 일이다. 이렇게 그의 80 평생, 기구한 일생은 끝을 맺는다. 그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의 명맥도 끝이 났다. 유럽의 신대륙 정복자들에 맞서 싸운 200여 년의 긴 전쟁도 종말을 맞았다.

왜 미국 공정대원들이 이같이 기구한 일생을 산 인디언의 영웅 제로니모의 이름을 적진에 낙하하는 순간에 외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고얄레’처럼 용맹하게 한 몸을 던져 싸우겠다는 결의의 표현 같기도 한데 그들이 이렇게 복잡하고 굴곡진 고얄레의 인생사와 역사를 알고 나서도 그렇게 외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제로니모가 소수의 아파치 전사들을 이끌었지만 병력의 수나 장비에서 절대 우세의 미국 정부군과 멕시코 군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섬뜩한 타격을 가한 인디언의 영웅이었듯이 적진에서 그렇게 영웅적으로 싸우겠다는 뜻이라면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물론 자기들이 좋아 그렇게 외치는 것을 가지고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걱정해 줄 일이 아닌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Geronimo. E-KIA (Geronimo. Enemy killed in Action).’ ‘제로니모. 교전 중 적 피살.’
백악관 상황실에서 미국 특공대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을 실황으로 보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리언 파네타 국장의 긴급 직보다.

이 급보가 도착한 것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2011년 5월 4일 오후 5시다. 물론 현장을 상활실의 스크린을 통해 시종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긴급 타전된 이 공식 급보를 보고서야 오바마 대통령은 마음을 놓았다. 그때서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잡았다(We got him)’라고 외쳤다. 이 순간 오바마 스스로 자신이 미국의 영웅이 돼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지만 이 작전에 오바마의 정치생명이 걸려 있었다. 절체절명의 정치 명운이 걸린 특급 작전이었다.

오바마가 직접 지시하고 CIA 리언 파네타 국장이 주도한 이 극비 특공작전이 실패하는 날엔 1980년 이란 인질 구출작전의 실패로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의 꼴이 난다. 그러니 백악관 대변인이 말한 대로 ‘1분이 1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작전으로 미국은 10년을 추적해온 9.11테러 사건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기어이 제거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라졌다. 그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보통 인간의 말로와는 달리 흙에서 왔으나 물로 돌아갔다. 물밑에 가라앉히는 수장(水葬)을 당했다. 영혼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살아 온 길이 보통 사람과 달라서인지 몸이 간 곳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그의 업보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작전명은 제로니모였나. 미국을 괴롭힌 오사마 빈 라덴이 인디언의 영웅 제로니모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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