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천지일보 2017.11.29 DB
국가인권위원회. ⓒ천지일보DB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쌍방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들이 외국인만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23일 인권위에 따르면 A씨(모로코 국적)는 지난 3월 아파트 노상에서 이삿짐 사다리차 일을 하던 중 처음 보는 행인이 다가와 ‘너 이X의 XX 불법체류자 아냐’라고 욕설을 하며 촬영해 A씨가 휴대폰 카메라 뒷부분을 가리며 사진 촬영을 막고, 행인의 행위에 위협을 느껴 112에 신고했다.

A씨의 아내인 진정인은 “남편이 행인의 몸을 민 적이 없고, 단지 행인이 휴대폰으로 A씨를 촬영하려고 해 상대방의 휴대폰을 밀었을 뿐”이라며 “(그러나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한 이후)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파출소와 경찰서에서 통역 없이 조사를 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행인이 A씨가 욕을 하면서 가슴부위를 밀치는 폭행을 했다고 처벌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며 “A씨는 행인을 밀치기는 했으나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밀친 것도 폭행죄에 해당함을 설명하고 A씨를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A씨가 행인을 밀친 것을 현장에서 인정했다 하더라도 출동 당시 A씨가 이삿짐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신분증을 제시해 신원 확인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체포 당시 A씨의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염려가 상당했거나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볼 만한 내용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112 신고내용(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비교적 경미한 사안이었던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추후에 출석을 요청하거나 자진출석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조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경찰관들이 현장 도착 후 10여분 만에 행인에 대해서는 자진출석하도록 안내하고 외국 국적의 A씨에 대해서만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봤다.

통역 제공 등과 관련해 인권위는 한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된다고 해서 통역이나 신뢰관계인 등의 참여 없이 외국인을 조사한 행위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4조 제3항에서 정한 취지에 반하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평등권 및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경찰관들은 당시 A씨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A씨도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서 통역의 제공이나 신뢰관계인의 참여 없이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원회 조사 결과 A씨는 한국에서 8년 정도 거주해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으나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길게 말하는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또 현행범·피의자 등과 같은 법률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또 당시 파출소 CCTV 영상에 따르면 경찰관들과 A씨가 손동작을 하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수차례 확인되는 등 한국어만으로 의사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파출소 CCTV 영상에서 A씨가 손을 뻗어 막는 듯한 동작을 취하는 모습과 체포 당일 경찰서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에서도 ‘막았을 뿐이고 몸에 닿지는 않았다’라고 진술했던데 반해, 경찰관이 파출소에서 작성한 현행범인체포서에는 A씨가 ‘가슴부위를 1회 밀친 것을 인정했다’고 A씨의 진술과 다르게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형사절차에서의 진술은 다른 문제이므로 의사소통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특히 외국인의 경우 우리나라 형사절차에 대해서 생소하거나 이해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 형사절차에서 불이익이나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찰서 조사에서 A씨가 ‘2012년에 한국인 부인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진술만으로 통역 없이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한 A씨의 명시적인 동의로 볼 수 없다고 보고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이와 같은 경우를 명시적인 동의로 용인하거나 양해하는 경우 외국인 범죄 수사에 있어 형사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의사소통의 불완전성을 이용하는 등 임의성을 가장한 강제 수사나 강압 수사가 행해 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보고, 외국인 조사에 있어서 통역의 제공 여부를 확인하는 의사에 대해 보다 엄격한 증명이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한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인을 신문하는 경우에도 통역의 제공 여부, 신뢰관계인의 참여 여부, 요청사항 등에 대해 반드시 확인하고, 그에 따른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당사자가 직접 읽고 작성해야 하는 미란다원칙 고지 확인서·임의동행 확인서와 우리나라 형사절차에 대한 안내서 등의 경우 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자료를 마련하고, 일선 파출소 및 지구대에서 적극 활용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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