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시내 한 편의점 매장에서 점원이 쥴(JUUL)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수거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담배 관련 이미지. ⓒ천지일보DB

건보공단, 담배회사 상대로 530억여원 손해배상 제기

“폐암, 비흡연자에게도 발생… 특이질환 볼 수 없어”

“‘니코틴·타르, 건강 해롭다’ 문구 포함해 결함 아냐”

건보공단 “대단히 충격적 판결… 항소 등 노력 계속”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흡연 피해 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6년 동안의 장기 소송에서 패배를 받아 든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항소의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홍기찬 부장판사)는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2013년부터 8월 27일 ‘건강보장정책 세미나’를 통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 가능성을 처음 드러냈다. 지난 19년 동안 흡연자들의 검진·진료 데이터를 분석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건보공단의 무기였다.

이후 2014년 4월 14일 서울중앙지법에 담배로 인해 3456명의 흡연자가 폐암 및 후두암이 생기면서 보험급여 명목으로 533억여원을 지출하는 손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과 흡연자들을 대신해 건보공단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모두를 인정하지 않았다.

담배. (게티이미지뱅크)
담배. (게티이미지뱅크)

재판부는 먼저 “건보공단이 요양기관에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 보험자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자 자급 집행에 불과하다”며 “이는 건보공단이 감수해야할 불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피해자로서 손해배상을 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해 그 비용을 회수할 여지가 있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법원은 담배를 피운 이후 병을 얻은 흡연자들을 대신해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권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구상권을 인정하기 위해선 담배회사에 설계상·표기상 결함이 있어야 했으나 법원은 결함을 문제 삼지 않았다.

재판부는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거나,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이를 채용하지 않는 것 자체를 설계상 결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니코틴이나 타르가 담배의 맛을 결정하는 만큼 이를 제거하는 담배를 만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담배회사는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 문구나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표시 문구를 담뱃갑에 표시했다”며 “추가 설명, 경고 기타 표시를 안 했다고 표시 상 결함이 인정된다고 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법률상 해야 하는 책임을 다했으므로 결함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폐암 등의 질병과 흡연 사이의 인과관계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폐암에 걸리기 때문에 반드시 흡연으로 인한 특이성 질환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53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 출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1심은 패소했다. 2020.11.20.
[서울=뉴시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53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 출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1심은 패소했다. 2020.11.20.

앞서 대법원도 2014년 건보공단이 소장을 내기 직전에 이와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흡연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고, 개인의 암 발병과 흡연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만일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선 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발병 시기, 흡연 이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등 더 많은 증거가 증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1심도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따른 셈이다.

판결을 받아든 건보공단 김 이사장은 “오늘 판결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항소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도 건보공단은 담배의 피해를 밝혀나가고 인정받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아직은 담배 피해를 인정하려는 분위기의 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부분에 대해 건보공단이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지만, 앞으로 사회적 인식이 더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담배업계는 일제히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는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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