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날

신현정(1948-2010)

하늘이 개였다, 흐렸다.

아하, 개이기는 개이려나 보다

비 온 뒤 조금 흐린 날

어디서 지렁이 나와 기고 있는

땅 한 줄 향기롭다

 

 

 

오랫동안 비가 오다 조금 날이 들면, 흙 속에 있던 지렁이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온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흙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생물들이 산다. 그 흙을 밟으며,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만이 이 땅에서 사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을 한다.

땅은 이러한 지렁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다. 시인은 땅의 이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향기롭다’라고 노래한다. ‘어디서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기고 있을’ 그 땅, ‘그 땅 한 줄 향기롭다.’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실은 지렁이가 기고 있는 한 줄의 땅, 그 땅만이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그 향기로움 바라볼 줄 아는 시인의 마음, 그 마음이 진정 향기롭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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