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봉길의사가 야학에서 농민과 청소년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데 사용한 교재 농민독본. 이는 84년 만에 확인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윤봉길 의사가 농민과 청소년에게 한글을 깨우치고자 펴낸 <농민독본>이 84년 만에 발견됐다.

<농민독본>은 윤 의사가 1927년 그의 나이 19세에 문맹퇴치를 위해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만든 책이다. 현재 <농민독본>은 윤봉길 의사의 유품과 함께 보물 제568호로 지정돼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우리 민족을 완전히 말살하려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쌀 등을 약탈해 가 농민들은 가난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언론과 학생층에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 아래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들과 함께 윤 의사도 농촌을 계몽하는 일에 앞장섰다. 농민들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그가 농촌계몽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공동묘지 묘표사건이다..

윤봉길은 공동묘지에서 여러 개의 묘표를 뽑아서 메고 오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 그 농부는 아버지의 산소를 찾기 위해 공동묘지를 갔으나 글을 몰라 묘표에 쓰인 이름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어느 묘가 부모의 산소인지 알 수가 없어 근처의 묘표를 다 뽑아들고 글을 아는 사람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때마침 윤봉길을 만났으나 농부는 그 푯말을 뽑은 산소를 표시해 놓지 않아 끝내 부모의 묘를 찾지 못하고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윤봉길은 농민들의 무지함을 보고 애탄하며 야학을 세우고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으며 민족의식의 고취에 힘썼다. 이때 야학 교재로 사용한 책이 바로 <농민독본>이다.

<농민독본>에서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운동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나는 농부요 너는 노동자다 우리는 똑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높지도 낮지도 아니하다’라며 평등사상을 말했고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는 자유사상을 주장했다.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나라’라는 농본주의,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한 이상 국가를 갈망하는 그의 정신이 담겨있다.

윤봉길은 단순한 계몽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민족정신의 부흥을 꾀하기 위해 야학당, 판매조합, 농민공회당의 성격을 고루 갖춘 부흥원을 마을메 만들기도 했다.

 

▲ 윤봉길 의사가 야학회, 월진회 등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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